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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것이 이토록 편안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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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명순 댓글 3건 조회 1,593회 작성일 04-06-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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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 6. 1. (텅 빈 학교에서..혼자임을 감사해하며!)

 “친한 벗의 고마운 점은 함께 바보스러운 말을 할 수 있는데 있다.”

  나도 가끔은 학교에서 함께 바보스러운 말을 나눌 벗이 있었으면 싶다.
그래서 가슴속에 있는 인간적인 찌꺼기를 함께 털어내고 서로 진정어린 충고를 해 주고,
같이 발전해 가는 그런 짜투리 시간들이 있었으면 싶다.
교사로서의 모습만이 아닌 인간적인 모습 속에서 진정한 교사상이 자연스레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내일이 예비수능이 있는 날. 우리 교무과는 몇일 동안 정신없이 비상사태 터진 것처럼 밤 늦도록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실수도 타인들은 인정이나 이해하려 들지 않고 삐죽삐죽... 부탁이나 싫은 소리 못하시는 우리 부장님을 보는 우린, 맘 아프고... 말할 수 없이 속상하고 지치지만 그래도 웃으며 자연스레 말하며 마치 나의 일을 떠 넘겨 죄송하다는듯이 쩔쩔매며 ... 이 무슨 우스운 일인지...

어느 날 작은 책자에서 읽은 수필이 아름다워 다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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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네게 기차표를 선물하고 싶다.

  나는 너에게 이런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
나에게 주어진 삶을, 그것이 넓고 편안한 길이든 좁고 가파른 길이든 차분하고 담담하게 껴안아 믿음이 가는 친구. 그러던 어느날, 불현듯 일상에서 벗어나도 좋을 시간이 오면 왕복 기차표 두 장을 사서 한 장은 내 몫으로 남겨두고, 또 한 장은 발신인 없는 편지 봉투에 담아 우체통에 넣고는 은밀한 즐거움으로 달력의 날짜를 지워가는 그런 친구.

  행선지는 안개 짙은 춘천이어도 좋고, 전등빛에도 달빛인 줄 속아 톡톡 다문 꽃잎을 터뜨린다는 달맞이꽃이 지천에 널려 있는 청도 '운문사'이어도 좋을 것이다. 중요한 건, 너보다 한걸음 앞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는 것. 그래야 하늘을 배경으로 바람이 불 때마다 지붕에 서 있는 풍향계가 종종걸음 치는 시골 간이역, 낡은 나무 의자에 앉아서 너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

  뜬금없이 날아든, 그리고 발신인 없는 기차표에 아마도 넌 고개를 갸웃하겠지. 그리곤 기차여행에 맞추기 위해 빡빡하게 짜여진 일정의 일을 서둘러 끝내고 나서 청바지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기차를 타리라. 또한 규칙적으로 흔들리는 기차의 율동에 몸을 맡긴 채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비도시적인 풍경을 보며 바쁜 일상에 함몰되어 지낸 그 동안의 네 생활과 일상으로부터 탈출을 차표 한 장에 실어 선물한 사람의 마음을 흐믓하게 생각하리라.

  예정된 시간에 기차는 시골 간이역에 널 내려놓을 것이고, 넌 아마도 낯선 지역에 대한 조금의 두려움고 기분좋은 긴장감을 느끼며 개찰구를 빠져 나오겠지. 그런 후 너는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네가...!?’ 하는 말과 함께 함빡 상큼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미지의 땅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 발견한 안도감과 일박이일의 여행, 그 신선한 자유를 선물한 사람을 찾아낸 즐거움으로 말이다.

  늘 곁에 있지만 바라보는 여유가 없어 ‘잊혀진 품’이 되어 버린 자연속에서
우리는 또 한번 여장을 꾸려 ‘함께 그러나 따로이’ 자기 내면으로의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
우리가 도시를 떠난 건 바로 이 여행을 시작하기 위함이었으니까. 그리고 일박이일의 여정을 끝냈을 때 우리는 각자의 내면으로 향한 고독한 여행으로부터 무사히 돌아왔음을 축하하며 우리 일상이 속한 도시를 향해 가는 기차에 ‘함께’ 오를 것이다. 그리고 도시로 돌아가 자기 몫의 삶을 담담히 살아낼 것이다.

  친구야, 너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네게 선물한 차표가 결코 일박이일의 여정에 국한된 것이 아님을, 앞으로 우리에게 남은 시간들 ‘인생’이라는 긴 여정에서 네가 특히 힘들고 고단할 때 보내질 선물이라는 것을. 내가 너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주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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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텅 빈 교무실이 결코 쓸쓸하지 않다.
그건 너무나 너무나 편한 고독이 남아있어서다.
그래 고독하다는 건 소망도 남아 있다지 않는가.

그래, 난 오늘 거침없이 떨어진 자처럼 자고 낼 활기차게 달려와서 차와 간식을 준비할거다.
우린 집행부라서 감독을 감독? 도와주는 일을 한다.
처음으로 복도요원을 하게 되어 설렌다???

댓글목록

이양섭님의 댓글

이양섭 작성일

  산호처럼 예쁜 명순님 혼자있던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멋진 글을, 아니 명순님의 멋진 마음을 읽을 수가있게되었군요. 종종 이런일이 발생되기를 희망합니다 ^ ^*

김복진님의 댓글

김복진 작성일

  시골 간이역에도 철길 사이 흔들리며 향기를 드리우는 꽃향기 앞에 낮은 그림자가 길어질 무렵이면 맑은 얼굴이 떠 오를 겁니다.

황숙님의 댓글

황숙 작성일

  ``    훗 ...    산호님의  투명  ``    아름다운  사랑이 있습니다..    숲속에  한떨기..    백합같음이...    훗  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