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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다알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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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남윤 댓글 5건 조회 1,854회 작성일 04-07-25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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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와 다알리아

 어제 군부대교육을 일시 마치고 돌아와 마눌과 막국수를 먹으러 여우고개로 갔다.
복더위에 지친 많은 사람들이 막국수, 메밀콩국수를 드시며 더위를 피해가고 있는데 우연히  그림방 친구를 만난 마눌이  이런저런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는 바람에  모처럼 꽃사진이나 몇장 찍으려고  이곳저곳을 기울이다 노란 다알리아를 발견하였다.
이 꽃은 시골 큰집 이웃마을에 사시는 큰누님이 매우 좋아하시는 꽃이다.
나와 띠동갑이신 큰누님은 5남매 가운데 어쩌면 나하고 가장 가까운 그리고 어머니와 같은 존재이시다.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황해도 연백에서 강화도쪽으로 피난길에 나섰던 아버지는 피난을 고사하시는 할머니를 돌보라고 큰누님을 두고 남하하셨는데 큰누님은 떨어진 식량을 가지러 다시 북으로 가셨던 머슴 찬문이 아저씨를 통해 가족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할머니의 크신 뜻이 있었겠지만은 4대독자이시던 아버지는 이산의 울분을 술만 잡수시면 큰누님에게 분풀이를 하셨고 그런저런 사정으로 누님은 형제중 유일하게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부평에 사시는 이모님댁에 식모살이겸 양장을 배우러 떠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아버님 병이 깊어지고 어머니께서 행상에 나서게 되시자 큰누님이 돌아오셨는데 꽃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위해 당시 희귀한 품종이라고 부평 이모님댁에서 가지고 왔던 꽃이 노란 다알리아였다.
누님은 딱지치기, 구슬치기등으로 돌아올 줄 모르는 어린 나를 불러다 씻기우고  찬밥을 간장에 비벼 숟가락으로 먹여 주시던 자상한 어머니이셨다.

어느날 마을에 가설극장이 들어오고 외사촌형님이 기도를 보는 끝발로 나는 마을 악동들을 데리고 개구멍으로 무료입장하여 “돌아오지 않는 해병”등 영화를 보러 다녔는데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큰누님이 낯선 청년과  다정하게 집으로 귀가하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얼른 다른길로 먼저 와서는 그 청년이 누구일까 곰곰이 생각하다 잠이 들었었는데 마을에는 “연수(큰누나)가 이웃마을 사는 oo와 연애를 건다.”는 소문이 떠돌던게 그 무렵이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학교에 갔다오다 지나치게 된 그 형의 집에도 노란 다알리아가 심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잠이 안오는 여름밤이면 어린나이에도 조만간 누나가 시집을 가시겠구나 하며 섭섭함에 눈가에 눈물이 고이곤 하였었다.
그런데  이웃마을에서 매파가 오고 키가 훤칠한 다른 아저씨가 우리집에 인사를 다니면서 큰누님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에 나서게 되었는데 싫다고 징징우는 누님을 마지막으로 호통쳐 아버지는 끝내 사주단자를 받으시고 나는 거기에 딸려온 엿이며 과자들을 맛나게 먹은 기억이 있다.
어느날 밤 누님이 소리죽여 울다가 목욕을 하시는 걸 알고 나는 누나가 목매어 죽지는 않을까하는 잔망스런 생각을 하기도 하였는데 결국 아버지는 당신 살아생전 딸 하나라도 시집을 보내시려고 어린 나를 데리고 영등포시장에 데리로 가셔서 지짐에 들어갈 치자며 수정과에 넣으실 곶감등을 사시던 기억이 나는데 그게 아버지와 내가 쇼핑을 한 유일한 추억이다.

할머니를 두고 온 미안함에 누나는 등 떠밀려  시집을 가게 되었고 손이 귀한 집안에 들어가 1남5녀를 낳고 매부가 돌아가심에 따라 홀시어머니와 어린 조카들을 데리고 가시밭길을 살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그 사실을 두고두고 가슴아파 하시다가 결국 누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고 매부 돌아가신 이듬해 할머니를 손짓으로 부르시며 하늘나라로 가셨다.

지금 생각해 보니 여름방학마다 애들을 데리고 방문하였던 누님댁에도  늘 노란 다알리아가 심겨져 있었고 시골집 먼지 알러지 때문에 걸그렁 거리던 우리막내(현재 육군 상병)를 젖물려 주시던 누님~
올해도 누님댁엔 노란 다알리아가 피어있겠다.

 가끔 누님생각이 날 때 마다 다 큰 학생들에게 말하곤 한다.
“ 너희들 갑돌이와 갑순이가 왜 결혼을 못했는줄 알어?”
“ 동성동본이라서요!”
“ 아니다, 적극적인 사랑고백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들랑 수단방법을 가리지 말고 내 사람으로 만들어라.”

장마가 끝나고 3주간의 교육도 끝이 보인다. 8월초 시골 큰누님댁에 가면 올해도 노란 다알리아를 볼 수 있겠지.
누님께 짖궂게 물어 보아야 겠다.
“ 누이, 아직도 찬행이 아저씨 생각나? ” 하고...

댓글목록

윤종민님의 댓글

윤종민 작성일

  찡하는 전설같은 이야기를 듣습니다...아프게 듣진 않으렵니다...누님도 지금은 행복하시겠죠...해맑은 노란 다알리아처럼!!!

이양섭님의 댓글

이양섭 작성일

  은은한 미색.......... 사진으로는 국화의 느낌도 ...........진록의 잎새에........ 아름다움이 가득합니다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6.25가 가져다 준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 야그네요.이 얘기에서 "누나는 과꽃을 좋아했지요.꽃이 피면 꽃밭에서 아주 살았죠"란 동요가 떠오르네요.기실 저야 한국전쟁으로 인한 이산의 아픔은 없습니다만 전쟁으로 인한 야그꺼리는 많지요.취학 전 주먹밥 두 개씩을 얻어먹는 재미에 나무그늘에서 "백두산 줄기줄기...김일성 장군"이란 노래를 배우던 기억,인민을 들판에 모아놓고 그 자리에서 총살을 하던 기억,팔치산과 국군의 대치 등 어린시절이 주마등처럼 흘러가네요.'누나는 노랑다알리아를 좋아했지요"로군요.가슴이 메이지만 뭉클해집니다.

김정림님의 댓글

김정림 작성일

  가슴 한켠이 싸한 느낌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행복 하시겠죠?

이요조님의 댓글

이요조 작성일

  다알리아도 예쁘지만...이야기도 곱네요. 미당의 한 송이 국화가 아니라 김남윤님의 다알리아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