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야생식물연구회

자유게시판

HOME>이야기>자유게시판

작은 일 하나~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남윤 댓글 4건 조회 1,410회 작성일 05-05-16 23:18

본문

꿈속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흰 남방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닭에게 모이를 주고 계셨다.
나는 여전히 철부지 소년으로  옆에서 열심히 부리로 모이를 쪼는 닭들을 보다가 “아부지”하고 부르는데 아버지는 아무말씀 안하시고 밤나무가 있는 재래식 뒷간을 지나 길을 가신다. 꿈에서 깨어나니 아침 5시가 조금 넘었다.
요즘 부쩍 야근이다 각종 모임이며 행사에 참석하다 보니 입맛도 잃고 공복이면 속이 아프다. 아내는 입에서 냄새도 심하다고 빨리 병원에 가보라 하지만 여전히 참을만 하니 차일피일 미루던 차에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왜 내시경 검사받으라고 하는데 속 썩이세요?”
장난반 진심반으로 “괜찮다. 아빠는 이젠 할아버지보다도 훨씬 오래 살았고 또 병철이도 제대하고 너도 돈 잘버는데.... 살만큼 살았다.”
“아빠, 미워~ 아빠 죽으면 나도 죽을꺼야!!!”
이 무슨 부녀지간의 몹쓸 대화인가?
“정지야, 괜찮아. 아빠는 할머니 닮아 90까진 못살아도 80까진 살것같다.”
“ 아빠, 내시경 안하면 내가 삼성병원에 예약해 논다~”
이크, 삼성병원은 비싸다는데 저것이 진짜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하는 수 없이 온가족의 집단농성에 떠밀려 대학병원엘 갔더니 내시경 예약이 1달이나 밀렸단다.
마을 앞 내과에 가서 진찰을 받았다. 간호사에게 못난 엉덩이를 보이고 주사2대를 맞고 희안하게 생긴 물약 2봉을 먹은 후  지시대로 침대에 누워 벨트를 풀고 지퍼를 내리고 깔대기를 마우스피스 대신 물었다.
“아파도 2분 정도만 참으시면 됩니다.”
2분이라~ 주기도문을 외울까? 아니면 춥고 배고팠던 어린시절을 생각할까 하는데 의사의 지시가 떨어진다.
가급적 눈을 뜨고 깔대기는 너무 꽉 물지말고 반드시 코로 숨을 쉬라고...
참기 힘든 고통이 찾아오고  낯선 이물질의 침입에 방어본능으로 창자가 옥죄어 오는 통증속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 이 무슨 볼성 사나운 꼴인가? 90의 노모가 아직도 성성하신데 어버이날 며칠 지났다고 
이런 불효를 하고 있다니..“  세상을 좀더 착하게 살 수도 있었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보다는 왜 여기까지 왔는지 그리고 이렇게 추한 모습으로 알지도 모르는 낯선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몸속 구석구석까지를 드러내어 놓아야 되는지...
살면서 속상하는 일들도 참 많았다. 하지만 속상하지 않아도 되는것들도 있었는데..
꼭 지녀야 할 것들도 있지만 버려도 될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불필요한 욕심, 부질없는 부러움과  증오, 그리고 가증스럽게 남을 속여 온 위선 등등 온갖 치부들이 다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다.
“ 잘 참으시네요. 상태가 좀 그래서 조직 2군데를 떼어냈습니다. 결과는 10일후에 나오는데 크게 걱정은 마십시오”
10일치 약을 한 보따리  받아들고  약사의 처방전과 주의사항을 건성으로 들으며 나오는데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 아빠, 드디어 하셨다며... 잘했어요. 근데 수면내시경이야 그냥 했어?”
사실 나는 수면내시경이 있는 줄도 몰랐다. 워낙 남의 말을 잘 듣는 범생이라 의사의 지시대로 순순히 침대에 누웠으니까....
“ 에구, 자린고비 아빠는... 돈2만원이 아까워 수면을 안하다니 ...아빤 알아줘야해~”
모든 것이 잘 될것이다.하늘이 저렇게 푸르고 또 산과 들은 얼마나 건강함으로 세상을 포옹하는가?  새삼 내가 사는 이 세상이 아름답다.
           

댓글목록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저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정말 눈물이 절로 나더군요. 그래도 내 눈으로 깨끗한 속을 보고 나니 좀 안심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그 바람에 술을 더 자주 하는 거나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건강 잘 챙기십시오.

박철규님의 댓글

박철규 작성일

  고생하셨네요.그래도 건강은 건강할때 미리미리 챙기셔야죠.그냥내시경 하는동안 주기도문 몇번이나 외우셨나요?^.^

이양섭님의 댓글

이양섭 작성일

  너무 걱정 마십시요. 위장병에 관한 한 ......... 거의 100% 완치 되는 것으로 알고있네요. 위장약이 원체 발달되어있어서리....^^*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허허허...남의 재미있는 야그가 아니네요 그려.좀 괴롭더라도 수면내시경은 하지 마십시요.2~3분만 역겨움을 참으면 되는데 수면내시경 검사는 세 시간 정도를 자고나야 병원을 나서게 되고 운전을 할 때는 잘 모르는데 몇 시간 뒤엔 운전한 기억이 안납니다.그만큼 위험하다는 얘기지요.건강은 잘 체크해야지요.허지만 잘 되던가요 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