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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우물이 있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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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남윤 댓글 7건 조회 1,598회 작성일 05-09-03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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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는 말만 구월이지 복을 뺨치는 여름날이었다.
2박3일 출장중 내 낡은 애마는 종일 에어컨을 2단으로 틀어도 등때기가 후끈 거릴 만큼 더위와의 싱갱이를 하며 서둘러 일을 끝내고 9순노모가 계시는 큰댁으로 향했다.
미리 가겠노라 전화를 하면 어머님이 하루종일 동구밖에 나와 촌노들과 기다리시는 일이 다반사라
아예 기별도 않고 드시기 편한 무른 복숭아 한상자와 형님과 쏘주 한잔할 간자미를 대명포구에서
사서 먹기좋게 무침까지 완성하여 당도하였더니
역시 형수님은 공장에 가시고 형님은 경노당에 한잔하러 끌려가셔서 촌집을 지키는 것은 귀 먹고 등이 꼬부러진 9순노파와 10000원에도 가져가지 않는 늙은개 "쑝쑝이"뿐이다.
"아니, 얘가 기별도 없이....."
쉰 넘은 아들인데도 어머님에게 나는 그저 철없고 늘 걱정이나 끼치는 못난 아들이다.
간자미 무침을 들고 형님이 계신 경로당으로 나가려 하니 기겁을 하신다.
"얘, 니 형수도 회 좋아하는데 나 하고 먹자~"
모처럼 어머님과 식사를 한다. 늘 그렇듯이 효부 형수님은 생선을 좋아하시는 어머님을 위해 오늘도 숭어 말린것을 밥에 쪄 놓으셨다. 연실 내 밥숟가락 위에 생선을 발라 올려 놓으시는 어머니...
혹시나 해서 간자미 회무침중 연해 보이는 회 일부를 밥위에 놓아 드렸더니 한번 드시고는 손사래를 치신다. 어지간히 단련된 잇몸으로도 뼈째 썬 간자미회는 넘기기에 버겁다는 말씀이시다.

저녁6시 30분에 우리꽃 정모월례회가 있어 서둘러 집을 나서려 하니 기다리라 하시며 잰걸음으로 텃밭으로 나가 풋고추며 애호박 몇개를 따다 주신다.
" 함께 사는 분들이랑 나눠 먹어라. 추석때는 너무 쇠서(단단해져서) 지금이 좋아. "

아, 어머니~
철없는 손주며느리가 쪽진 머리가 자주 흘러 내린다며 살살 꼬셔서 난생처음 커트를 하셨는데 내눈에도 영~~ 아니다. 젊은 세대들은 컷트다 파마다 염색이다 세태가 다르지만 당신의 젖을 먹고 자란 내 눈에는 역시 백발로 깊게 팬 주름을  덮었던 쪽진 머리가 더 좋았다.
형수님도 안계시는데 또 무언가 퍼 주시려는 기미가 보여 서둘러  시동을  거는 차창너머로 이제는 가실날이 훤히 보이는 무표정한 낡은 우물과 쑝쑝이가 희뿌옇게 오버랲된다. 

댓글목록

김종건님의 댓글

김종건 작성일

  늙어 가는 부모님은 항상 가슴이 애잔한 아품입니다. 장수 무강을 기원합니다.

송규현님의 댓글

송규현 작성일

  늙은 어머니를 항상  애잔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는데 이젠 그 어머니는 이 세상에 없으니...건강하게 오래 사세요.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김남윤님에게는 마음 아픈 얘기지만 제가 보기엔 보기 좋은 그림입니다. 어머니란 이름은 정말 아무리 불러도 그립습니다.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돈으로 치면 몇 푼 안 되는 풋고추며 애호박이지만 그 속에 붉은 어머님의 사랑이 가득 담겨 있지요. 제목도 멋있는 한 편의 수필입니다.

장은숙님의 댓글

장은숙 작성일

  저두요, 가슴 한켠이 아려오지만  또 한켠으로는 마음이 훈훈해 오는 풍경입니다.

김도진님의 댓글

김도진 작성일

  저는 옛날의 할머님 생각이 납니다.우리집 장손이라고 저만 한번 겨울 방학때 고향집 할머님댁에 내려가면 저 줄려고 다른손자 모르게 감추어 두었던 홍시와 부억 정지밑에 묻어 두었던 알밤 생각이나네요 김남윤님 덕분에 오늘 할머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님과 몇해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뵙고 싶어지네요 ....감사합니다

한명희님의 댓글

한명희 작성일

  음

손경화님의 댓글

손경화 작성일

  시골은 아니지만 시부모님이랑 사느라 친정은 손꼽는 날에만 가게 되지요. 친정어머니 생각이 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