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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로 보이는 각진 풍경-하루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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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이재 댓글 6건 조회 1,610회 작성일 05-10-29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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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나절, 찬비가 내렸습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창턱에 팔을 대고 턱을 괸 채 언제나처럼 3층 건물에서 아래를 내려다 봅니다.
감나무는 몇 개 달고 있던 열매를 우악스런 손에 어거지로 빼았기고도 노하거나 설운 기색없이
잎새마저도 제 스스로 떨구며 가진 것 모두를 내려놓으며 비우기를 거듭하고 화사한 봄날, 테니스 코트장
가득히 꽃비를 뿌려주었던 벚나무도 누런 옷으로 바삐 갈아 입는 모습이 역력합니다.

지난 날이 짧은 단풍나무는 숫자 헤아리는 데도 어설퍼 보일뿐 아니라, 밤낮으로 서 있는 것도
벅차보이기만 합니다. 그러나, 꿋꿋하게 곧추서려는 안간힘이 보기만 해도 애처로워 가만히 눈으로 쓸어주면
답례라도 하는지, 천수千手를 흔드는 소리가 사라락~들려옵니다.

시선(사실)으로만 보여지던 전경前景은 많은 것들의 왜곡으로 늘 개운찮은 뒷맛을 남기곤 하는데
산이 그리워 먼 곳을 응시하다가, 산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가슴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슴하게 보이는 먼 산은 그리움은 키울망정, 숲 안에서 보는 벅찬 감동이나 곁에서 지켜보는 웅장한 느낌을
전달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미세한 부분을 들여다 보았던 또 하나의 기억이 영상으로 펄쳐집니다.
 아름다운 숲을 이루는 것은 한 그루의 나무로부터 시작되더라는 것,
한뿌리에서 가지를 뻗고 그 가지 끝에 매달린 잎사귀들...각양각색의 같고도 다른 모습으로
어떤 이파리는 벌레먹어 상처 투성이인가 하면, 어떤 잎은 자라기도 전에 말라 비툴려 살 날을 다한 채로
또 어떤 잎새는 신이 빚은 투명함으로 세상의 빛을 받아 먹고 다시 붉디붉은 불꽃으로 토하더라는 것...

각이 진 틈새에서 바라 본 세상은 보이는 풍경마다에 모서리 하나씩 지녔습니다.
지붕도 각지고, 떠도는 구름과 하늘도 각이 져 날카롭습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다가 어쩌면 목부터 허리까지 등굽은 하나의 회한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타인에게 뿐아니라, 스스로도 그 날선 모서리에 언제 상처를 입을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후두둑~! 얼음보다 찬 빗방울이 이마를 때립니다. 얼마나 시원스럽던지요.
그 순간, 열어제낀 것은 비단 창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물밑 고기가 수면을 열고 하늘을 숨쉬듯, 가슴을 활짝 열고 정신의 자유를 만끽합니다.
오늘 내린 비가 지난 추억 속에서 갇혀 지내던 사색하나를 건져 올리게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어느 이름 없는 산기슭 발원지에서 시작되는 물방울 하나가 넓은 바다를 이루고, 바위틈에 떨어져
발아한 씨앗 한 알이 훗날, 거대하고 웅장한 숲을 이루듯,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우주의 일원으로
올곧게 우뚝 서 있던 바로 당신 때문이었습니다.

흘러가십시오.
멈추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바다와 만나게 될 것입니다.
기꺼움으로 동행할 것을 서약합니다.

댓글목록

홍종훈님의 댓글

홍종훈 작성일

  가슴에 와 닺는 글이군요. 잘 보고 갑니다.

김형태님의 댓글

김형태 작성일

  좋은 글 읽었습니다.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사진과 글이 잘 어울립니다. 바다가고 싶네요 오늘 가야지 히~~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멈추지 않고 유유히 흘러가다 보면, 언젠가는 바다와 만나게 될 그날을 고대하겠습니다.

김성대님의 댓글

김성대 작성일

  오늘! 산으로 갑니다. 그곳에서 바다를 볼렵니다........

장은숙님의 댓글

장은숙 작성일

  마음에 각이 질 때가 가장 속상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