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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문사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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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묘순 댓글 5건 조회 2,197회 작성일 02-10-2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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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도 운문사를 다녀와서... "

 작년 가을에 수시원서를 다 쓰고 너무나 아름다운(숨은꽃=운문사!) 청도 운문사를 다녀와서 쓴 것입니다. 올해도 수시원서를 다 쓰고 한번 다녀 올 것을 '바보선언'합니다.
 ***바보선언 : 선언하고서 못 지키면 바보가 됨***
 
 토요일, 밀리는 고속도로에서 친구랑 즐거운 생각과 웃음을 나누며 지루하지 않게 들판과 하늘과 산의 멋진 가을 정취를 푹 빠져 느끼며 장시간의 여행.
밤 10:30분 쯤 경북 청도 도착. 이름도 은근히 멋진 '운문사'
그 깜깜한 밤중에 소리없이 미끄러져 들어가 운문사 절 바로 앞까지 살짝 들어갔다 나왔다. 들어가는 입구 양옆의 노송들이 그야말로 '이제야 왔니?'하며 은밀한 속삭임... 정말 모든 주변 숲의 검은 밤 그림자들이 전혀 무섭지 않고, 한편의 사실주의시였다.
다시 소리없이 빠져 나와 절 앞에 방을 찾아 민박!
달콤한 잠을 2시간여 자고 새벽 2:30에 주인 할머니의 부름에 일어나 새벽예불! 내가 왠 예불? 운치와 아름다움의 절정인 그 모든 걸 진심으로 감상(불손한 단어이면 죄송!)하려고 ...

  그 새벽! 이제 막 딴 오이향과 같다는 찬 새벽 공기속의 일절 말없는 여승들의 움직임(운문사는 여승=비구니이 있는 승가대학의 절)이 정말 말 그대로 최고의 제자리매김 같은 거였다. 대웅전 앞의 마당하나를 다 뒤엎는 '처진 소나무'는 너무 신기한 조물주의 솜씨였다. 그냥 자연이 아니라 사상이 실린 예술작품 같았다. 물론 그냥 소나무인데 너무넘 크고 마당을 다 덮은 둥그런 모습에 저절로 내 입이 똑같이 둥그렇게 벌어져 다물어지질 않았다.
  3:00경이 되자 3분의 스님이 절 출입문 바로 위의 범종루에 올라가서 차례로 법고! 범종! 목어!를 치는데 그것이 바로 예술의 극치였다. 얼마나 신기하고 아름답고 멋지든지 난 탄성을 지를 수도 없었다. 제일 먼저 법고를 두 스님이 단 한번의 리듬도 끊이지 않게 교대하며 치시는데 그 모습은 하나의 완벽한 춤? 그 이상의 것!!! 바로 뒤이어 그 법고의 리듬을 받아 치는 범종의 울림. 그 소리가... 불교신자도 아닌 내게 모든 번뇌와 사념들을 가라앉혀 주는 무아지경? 편안한 무념무상?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이었다. 또 다시 이어지는 목어의 두드림은 정말 산과 천이 서서히 깨어나는듯... 그 3개가 끊이지 않게 이어지는 모습이 정말 신기 그 자체였다.
  난, 새벽 산의 회청색 실루엣과 조용한 너무나 조용한 움직임들과 간간히 들리는 목탁 소리가 정말 가슴이 멍하도록 아려왔다. 새벽편지라는 곽재구님의 글에서 보면,
"새벽에 깨어나 반짝이는 별을 보고 있으면 이 세상 깊은 어디에 마르지 않는 사랑의 샘 하나 출렁이고 있을 것만 같다. 고통과 쓰라림과 목마름의 정령들은 잠들고 눈시울이 붉어진 인간의 혼들만 깜박이는 아무도 모르는 고요한 그 시각에 아름다움은 새벽의 창을 열고 우리들 가슴의 깊숙한 뜨거움과 만난다."라는 그 뜨거움!
  새벽 눈물은 사기꾼의 눈물이라도 진실이라는데... 하물며, 이건 정말 순수한 눈물속에서 담백히 정화되는 느낌!!! 마지막 범종 33번의 소리와 목어의 울음이 끝나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어 스님들의 말없는 조용한 2줄의 행렬을 따라 대웅전으로 이동했다. 잠시 후 염불소리가 들리는데 다시 한번 와! 하는 탄성이 내 혼을 울렸다. 염불소리는 한국의 파리나무 십자가의 버금가는 합창! 난 그냥 얼어 붙었다. 2시간여 동안 나는 두툼한 방석위에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천상의 분위기에 압도되어 공중에 떠 있었다. 그리고 대웅전 밖에 벗어놓은 스님들의 2열 횡대의 고무신! 그대로 정갈한 조각품!이였다. 스님들이 자신의 고무신에 볼펜과 싸인펜으로 쬐끄맣게 표시한 모양(꽃, 별, 달, 영어알파벳, 아라비아숫자, 운동화나이키의 문양, )은 어찌나 귀엽고 특별하던지... 만일 내가 흰고무신에 그런 문양을 표시했다면, 아마도 그와같은 즐거운 감동은 전혀 없었으리라. 예불이 끝난 후 고요한 침묵 속에서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는 스님들의 행렬 그리고 새벽 달빛에 비친 감나무와 처진 소나무는 그대로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가 됨을 보고 난 정말 잔잔한 그림에 만감이 교차되며, 바로 이거다 하면서 두 손을 맞잡았다. 부엌으로 가서 그 새벽에 밥 짓는 스님들의 땀을 지켜보다가 슬며시 내려오며 이 모든 모습을 상상도 해 보지 않았던 나는, 뒤돌아 산그림자를 보며, 내 속에 있는 뒤엉킨 감정의 무게를 어느새 내려놨음을 그땐 느끼지 못했었다.
~~~~~~~~~
오래전부터
눈이 맑은 사람을 보면 부럽다.
마음이 맑은 사람을 대하면 묻고 싶다.
"어찌 그렇게 맑을 수 있는지."
찌들은 지식대신에 신록같은 맑음을 채우고 싶다.

맑은 사람 곁에선 아침 내음이 난다.
항상 그 상큼한 아침을 몰고 다닌다.
간단하여 오히려 대하기 편하고
서투른 지식으로 치장하지 않아
언제라도 진솔한 마음이 전해온다.
그런 맑음을 배우고 싶다.

어둠이 깔린 거리
아침은 짧고
그만큼 아침 내음을 풍기는 이는 드물다.
갈수록 야행성이 되어 사는 사람들의 뒷켠엔
아침보다 어둠이 길게 늘여져 있다.

그래도
오늘 그랬던 것처럼
내일도 아침을 몰고 오는 이는 있을 게다.
그 싱그러움을 내일 다시
배울 수 있을 게다.

맑은 이의 가슴이 흐려지지 않았으면......
미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았으면......
맑은 사람 곁에선 아침내음이 난다.
항상 그 상큼한 아침을 몰고 다닌다.
~~~~~~~~~~
 숙소에 도착해 단 잠을 마저 자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운문사를 다시 올라가 절의 모습을 구석구석 샅샅이 훑었다. 정말 단아한듯 정갈하고 아담하며 운치있었다. 굴뚝 하나도 담벽...화단...등 어느 하나도 정성어린 손길이 안 간 것이 없었다. 절 뒤로 흐르는 시냇물의 투명함과 아름다움은 또 어떻고..... 아~~~이토록 깨끗한 즐거움은 너무나 오랜만이다. 내가 본 것 중에 몇 개 좋은 것?을 꼽으라면, 주욱 ... 아, 바로 1순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이 운문사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기심이나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고, 아끼는 마음으로...
아, 이것도 지나친 집착? 버려야할 욕심?
어쨌든, 아름다움을 아끼고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들에게만 알려지길... 이 야생화를 찾는 님들에게는 속삭여 주고 싶다! 모두들 좋은 분들...이니까. 하지만, 그 곳을 가면, 반드시 새벽 예불을 봐야한다. 주변 풍광의 아름답고 멋진 감성은 여기에다 다 쓸 수 없지만.. 높고 낮은 산의 낙엽송 빛깔과 까치밥으로 남은 빠알간 사과와 주홍빛 감과 하늘거리는 억새풀과 ..... 난 난 정말 행복했다. 올라오는 고속도로 막히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운문사 새벽의 모든 !것, 사과빛의 가을 볕과 마음껏 사랑하다 온 몸과 가슴에 가득히 향기를 담아 편안한 그리움을 안고 올라왔다.                          (2001년 늦가을에...)

 ( 너무 길어서 죄송!합니다. 분위기 파악도 못한 건지??? ) 

댓글목록

송정섭님의 댓글

송정섭 작성일

  역시 맑은 감성으로 보면 훨 깊이 보이나 봅니다. 한번의 운문사 기행에 세번의 방문이 있었을줄은... 전날 도착해서 꼭 새벽예불을 봐야하겠군요~ ^^*

최남희님의 댓글

최남희 작성일

  좋은데요.. 저두 운문사로 발길을 돌려 보고싶내요....

고재영님의 댓글

고재영 작성일

  아...  가보고 싶군요.,.

김용환님의 댓글

김용환 작성일

  이렇게 느낄 수있고, 나타낼 수있는 사람이, 또한 마음이 부러워지네요.

지길영님의 댓글

지길영 작성일

  최묘순님의 글을 읽으신 야생화를 사랑하는 분들은 '청도 운문사'를 안가고는 못배기실것 같습니다. 묘순님의  행복감을 공유하고 싶어지는 느낌의 글 잘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