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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랑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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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윤영 댓글 27건 조회 1,219회 작성일 06-02-1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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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년 전에,
아니 11년 전에 제가 담임을 했던 녀석이 있습니다.

녀석의 친구로부터
녀석이 결혼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꼭 가마 하고 약속을 하지는 않았지만
녀석 동기들 결혼식은 처음이라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녀석은
그 당시 성적은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우리 반에서 제일 성실하고 부지런했습니다.
녀석은 전문대학을 나와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정비경험을 쌓다가
다시 4년제 대학을 나온 억척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지기와 함께 옛날에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문경으로 놀러 삼아 갔지요.

문경새재 가까운 예식장 입구에서
녀석의 친구들 몇 명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했습니다.
10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옛날 얼굴들이 그대로 있더군요.

계단을 올라서자마자 신랑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나를 보자마자 녀석은 제 부모님이 계시는데
대뜸 바닥에 엎드려 너부죽 큰절을 하는 게 아닙니까?
빨리 일으켜 세웠지만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녀석의 예복 무릎에 먼지가 묻어 털어주었습니다.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신랑이 눈물을 보이면 안 되니 빨리 닦으라고 했지만
녀석은 반가워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며칠 전 10년 만의 전화통화를 할 때에도 녀석은 울먹울먹했습니다.
 
결혼식 중에도 녀석은 양가 부모님께 너부죽 큰절을 올리더군요.
신부도 무척 예뻤습니다.
하긴 요즘 같이 약은 세상에 보기 드물게 성실하고 순진한 녀석이니
신부인들 예쁘지 않고 배기겠어요?
만세삼창을 시키니 예식장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크게 하더군요.^^

점심을 먹고서 그냥 오기 뭣해서
신혼여행 잘 갔다오라고 인사를 하러 갔더니
녀석은 또 울먹울먹하는 거였습니다.

나이 서른도 넘은 녀석이
아직도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걸 보니
참 기특하면서도 신기했습니다.

창녕에서 군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녀석이
부모님 잘 모시며 정말로 예쁘게 알콩달콩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는 길에
문경 갈평 '관음요'에서 직접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다른 제자의 집에 잠시 들렀더니
새로이 자기가 개발했다면서 예쁜 부부찻잔 세트를 선물로 주더군요.

그런 것 주면 너한테 다시는 놀러 못 온다고 했더니
도리어 자기가 날 못 찾아보아 죄송하다며 굳이 선물로 주었습니다.
사실 이래서 이녀석에게 놀러가기는 쉽지가 않습니다.
녀석은 지난 해 대한민국 문화예술부문 신지식인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정월 대보름인 오늘은 정말 기분이 좋은 하루였습니다.
제가 가르친 녀석들 참 신통방통하지요? 

댓글목록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즐겁게 하루 보내셨네요

박대철님의 댓글

박대철 작성일

  이 세상에사는 사람들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대부분 조금씩 배 아파 하는데 스승만은 제자가 잘 되는 것을 진정으로 기뻐 한다고 하더군요. 역시 정 선생님도 틀림 없는 선생님 이시군요.

홍은화님의 댓글

홍은화 작성일

  좋은 스승님한테는 늘 좋은 제자들이 따르게 마련인것 같습니다. ^^

한미순님의 댓글

한미순 작성일

  감격~!ㅠㅠ

신흥균님의 댓글

신흥균 작성일

  와~ 자랑 기백번 하셔도 됩니다!!! 부럽고, 정윤영선생님이 존경스럽고....좋은 글 때문에 행복하고...감사함다!!!

김종건님의 댓글

김종건 작성일

  훌룽한 선생님께 직접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놓쳤지만 지면상만이라도

김종건님의 댓글

김종건 작성일

  배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정옥님의 댓글

이정옥 작성일

  정윤영님께서는 앞으로 더 많은 나이를 먹어도 제자들의 사는 모습을 보며 인생의 허기짐에는 끄덕 없겠네요~ ^_^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모두들 고맙습니다. 제자 자랑하는 것 보고 설마 팔불출이라 하지는 않겠지요? 공부로는 뛰어나지 못했어도 열심히 사는 녀석들 보면 제일 기분이 좋답니다. 지난 해 말썽을 많이 부려서 속으로 미워했던 놈이 한 학년 올라가자마자 만나면 제일 정답게 대하는 걸 보면 한 순간 미워했던 게 얼마나 후회되는지 모른답니다. 어쩔 수 없는 선생인가 봅니다.^^*

최연실님의 댓글

최연실 작성일

  참 부럽습니다..제자를 키우면서 이런 매력때문에 선생님의 길이 멋진 것 같아용!!

장은숙님의 댓글

장은숙 작성일

  교사는 이럴때 보람을 느끼지요. 저두 지난해 스승의날 15년전 아이들이 찾아왔었는데 어찌나 반갑던지요. 그담 월요일 우리 반 여자아이들이 선생님 토요일 어떤 아저씨들이 물건팔러 왔어요. 하길래 선생님 제자다 했는데 마음 한 쪽이 뿌듯하면서 어찌나 흐뭇하던지.. 정윤영 선생님 그 마음 저두 짐작이 가네요.

김세견님의 댓글

김세견 작성일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이것은님의 댓글

이것은 작성일

  인생의 자산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자산을 지니고 계십니다..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고맙습니다. 그냥 어제의 제 기분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

  와우~!!! 선생님 가슴도 사랑과 뿌듯함으로 보이지 않는 눈물, 그렁그렁 하셨을 것 같아요. 좋은 마음을 나누는 기쁨...우리 삶의 희망입니다. 국민(초등)학교 은사님이 너무 보고 싶은 밤...안부라도 드려야겠습니다.

이영태님의 댓글

이영태 작성일

  정윤영선생님,부럽습니다.제자들의 모습에서 선생님의 열정과 사랑이 느껴집니다.

박희진님의 댓글

박희진 작성일

  정말 스승된 입장에서 흐뭇하실 거 같습니다...저도 찾아뵙고픈 선생님이 계시는데 찾기가 쉽지 않네요..ㅜ.ㅠ

김호규님의 댓글

김호규 작성일

  오늘은 즐겁고 흐뭇한 이야기로 야개연홈이 더욱 더욱 빛나는 날이군요 아름다운 이야기들 보는이도 흐뭇합니다. ^^*

한명희님의 댓글

한명희 작성일

  근데요. 은사님들 말씀이 사회생활 잘하고 성공한 제자는 말썽꾸러기가 더 많다는군요 .모임때마다 은사님을 모시는데 할아버지가 되신 선생님이 우리보다 더 좋아하시데요. 아무튼 좋으시겠습니당..

문인호님의 댓글

문인호 작성일

  윤영님 정말 자랑할 만 합니다. 이 곳에서도 참 좋은 스승이십니다.

이향숙님의 댓글

이향숙 작성일

  이 곳에서도 참 좋은 스승이십니다~! 늘 그렇게 느끼며 감사하고 있답니다~^^*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그 기쁜 마음을 자랑할만 하네요.축하합니다.저는 3년 전에 큰 딸 아이를 시집보냈는데 제 초등학교 때 선생님께서 천리길을 와 주셨지요.참으로 감사하더군요.제자가 그리 기쁘니 스승님도 기쁘셨으리라 여겨지더군요.사도의 길은 멀고도 험한 길이지만 기쁨도 크겠지요.

송정섭님의 댓글

송정섭 작성일

  정말 자랑스러우시겠네요. 선생님이란 직업의 보람도 많이 느끼시겠고요~, 참 좋으셨겠어요.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아휴, 이렇게 꼬리말 달아주시니 앞날이 힘들 거 같아요. 열심히 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박수영님의 댓글

박수영 작성일

  저도 선생님 되는게 꿈이 었는데 지금 난 뭐꼬... 제자들이 대견해 보이겠습니다

김성대님의 댓글

김성대 작성일

  천상 선생님.  몇번을 읽어 봅니다.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제자의 선생님에 대한 존경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