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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꽃다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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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경녕 댓글 13건 조회 1,320회 작성일 06-02-1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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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가 시작되기 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선생님, *** 아시지요?"
"네, 알다 마다요."
그런데 학부모로부터 전화를 받으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또 무슨 문제가 생겼느나 하고요.
"선생님, ***가 이번에 서울 공대에 합격했어요. 다 선생님 덕분이예요."
그제사 가슴을 쓸어내며
"그래요?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를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을 했었습니다.
공부는 잘 하는데 아이가 무척 기가 죽어 있었습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거든요. 아버지가 일을 하다가 허리를 크게 다쳐 자리에 눕자 어머니가 학교 급식소 일을 하면서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 ***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 주십시오. 어떻게 하든 훌륭히 키워내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아이와 삼담을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어려운 형편은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고~~
위인들의 예를 들어 가며 '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 뒤로 아이의 태도는 달라져 보였습니다.
당장 기가 살아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굳게 다문 입술에는 단단한 각오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세월이 지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어느 분입니까?"
택배 아저씨 손에는 커다란 꽃다발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의 어머니께서 보내신 것입니다.
너무 감격했습니다.
고맙다고 인사를 드려야겠는데 학교 전화는 발신자 추적 장치가 없어서 전화를 할 수가 없네요.
나중에 아이가 다시 전화를 한다고 하니 그 때 같이 인사를 할 작정입니다.
전 직원들이 모여있는 교무실에서 꽃다발을 받은 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영웅이 되었고 잔잔한 감동은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습니다.
이날은 발렌타인데이입니다.
국적불명의 요상한 날이라고 코웃음 쳤는데 갑자기 묘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얼마전 아내의 생일날 백송이의 장미꽃을 선물 하려다 괜한 낭비라 생각하고 현금을 주려 했더니 무척 서운해 하던 아내가 생각났던 것입니다.
퇴근 후 리본을 뗀 꽃다발을 가져다 아내에게 선물했습니다.
저번 생일날 선물을 못했으니 발렌타인데이를 빌어 당신에게 꽃다발을 바친다고 능청을 떨면서 말입니다.
내심 캥겼지만 아내가 감격해하는 것을 본 순간 참 잘 가져왔다느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자는 이벤트에 약하다더니 내년 생일날에는 꼭 장미꽃을 선물하겠습니다.
디카를 2대 구입했습니다. 800만 화소급으로 하나는 등산용, 다른 하나는 촬영용으로 쓸 작정으로 장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겨울은 길고 추워서 어딜 가도 야생화를 볼 수가 없습니다.
좀이 쑤셔서 밤중에 형광등 불빛 아래 요리 조리 찍어봅니다.
다발로 찍은 것과 낱개로 찍은 것은 각기 다른 카메라입니다.
사진을 찍어놓고 보니 또 슬며시 사기칠 생각이 떠오릅니다.
모레 큰 애가 시집을 가거든요.
둘째에게 순서를 빼았겨 나중에 가지만 맏이만한 아우 없다고 첫 아이라 정이 더 갑니다.
요 꽃다발은 큰 애에게 보냅니다.
부디 행복하게 잘 살라는 아비의 염원을 실어서 말입니다.
요즘 졸업을 맞고 있는 각급 학교 졸업생들에게도 이 꽃다발을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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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한미순님의 댓글

한미순 작성일

  이꽃으로 많은분들에게 축하메세지가 되니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저도 이꽃을 보니 잠시 행복에 잠깁니다^^*

김옥배님의 댓글

김옥배 작성일

  선생님의 제자가 초등학교때 훌륭하신 선생님을 맏난 것이 그 학생에게는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생각됩니다. 좋은 제자를 맏나는 것 또한 선생님들의 복이고 보람이지요.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눈물이 핑 돌려고 하네요.저도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지도를 잘 받아 문맹 농사군의 아들이 대학을 나와 공직에서 정년까지 했지요.아버지와 그 선생님을 제일 존경한다고 누구에게나 당당하게 말합니다.아버지는 제가 고 3 때 사고로 돌아가시자 제 운명의 길을 한번 바꿔놓으셨지요.그 선생님은 7순이 넘으셨는데 지금도 찾아뵙고 있고 제 큰딸아이 결혼식엔 천리길을 서울까지 와 주셨지요.저도 교직에 5년 여를 봉직했는데 교직을 떠난지 35년이 지난 지금도 안부를 묻는 녀석들이 있지요.

김종건님의 댓글

김종건 작성일

  정말 훌륭한 선생님이십니다. 어릴 때 어려워도 자신을 알아 주는 선생님을 만나면 힘이 나는 법이지요.  화전민이었던 우리집도 무척 가난했었고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받아쓰기를 못해서 나머지 공부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2학년 때 전명수 선생님이 담임을 하셨는데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고 잘한다고 격려를 받아 그때부터는 조금 공부를 했었지요.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정말 기분 좋으시겠다. 나한테 배운 사람도 조금 있는데 그분들 인터넷 하면서 좋은 구경 많이 했음 좋겠네요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어린 나이에 사랑으로 다독이는 한 마디는 큰 결과를 가져올 수 있지요. 축하합니다.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

  따사로운 봄볕 같은 이야기가 날마다 가슴에 소용돌이를 만듭니다. 우리 모두가 몸도 마음도 건강한 모습으로 예쁘게 삶을 마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원해 봅니다. 콧날이 시큰해지는 날이 많아지는 요즘, 나이만큼 마음도 깊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장은숙님의 댓글

장은숙 작성일

  저도 내일 스물 한 명의 아들과 스물 두 명의 딸들을 졸업시켜 떠나 보냅니다. 서운한 마음에 학급문집 하나를 만들어 나누어 가졌습니다. 요즘은 학급의 일년을 CD로 구워서 주시는 선생님들도 많으시지만 그래도 전 책이 좋더라구요. 우리 아이들이 지금은 철부지지만 다들 자기 몫을 하는 나라의 동량이 됨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미래에 밝음이 가득하길...

박대철님의 댓글

박대철 작성일

  이젠 교직을 떠난 저는 제자들을 만날때 마다 마음 한구석엔 저  아이 (?) 가슴속엔 내가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있을까 하고 생각을 할 때가 많습니다.

김호규님의 댓글

김호규 작성일

  요즘 졸업시기 라 제 아들녀석 도 15일에 중학교졸업을 하였지요 시골학교라 졸업생이 23명 한명한명 일일이 단상으로 올라가 졸업장과 일인당 2~3개씩의 각종 상장들을 챙기고 교장선생님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몇일전 라디오에서 얼핏 졸업식에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런면에서 시골학교의 졸업식은 참으로 정겨운행사였습니다

이양섭님의 댓글

이양섭 작성일

  그러고보니 졸업시즌이 다가오고있군요 장미과 카네이션이 아름답게 잘 어우러져 사랑과 다사로움이 넘치는 것 같아요

김성대님의 댓글

김성대 작성일

  보람이 크시겠습니다. 덩달아 행복할 수 있어 감사드리고요. 지난 설날 뵈었던 은사님 생각이 많이나네요.

전경녕님의 댓글

전경녕 작성일

  정성껏 답글을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