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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백두산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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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훈 댓글 5건 조회 2,153회 작성일 06-10-2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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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되지 않은 글을 옮기다.


백두산 여행기

1.머릿말
2006.10.16~22. 7일간의 백두산 테마여행을 다녀왔다.
가나안신협이 주최한 행사로 회원 400여명이 10개 차량으로 편성되어 눈 쌓인 백두산을 보고 돌아왔다. 우리 내외도 석 달 전에 신청을 해 놓고 이번여행을 기다렸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초등학교 입학 할 때부터 60여성상을 불러온 백두산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인터넷과 지도 등을 검색하여 준비를 했다.

그러나 편도18시간 배타기, 10월 중순백두산의 추위에 대한 마음의 부담. 러시아 땅을 밟아본다는 기대와 압록강을 건너 북한 땅과 동포를 볼 수 있다는 기다림은 여행의 호기심을 더 해주었다.

보람 있고 힘들었던 기억들을 더듬으며 내 생애의 중요한 발자취로 이 여행기를 적어나간다.

2.서울-속초로 이동
8시 출발  속초항으로 향하는 버스는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미시령을 넘는 가을 단풍코스를 택했다.
3시간 여를 달리는 동안 화면에서는 2002 이미자 평양특별공연을 보내 주었고, 창밖에는 완전군장을 한 장병들의 이동모습을 볼 수 있어 나의 옛날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
옛날 사고 가 자주 발생하던 미시령 고개는 터널을 만들어 넓은 길을 안전하게 운행 할 수 있었다.
황태생각이라는 식당에서 중식을 마치고 속초항으로 이동했다.

3.속초-자루비노(Zarubino)
우리가 타고 갈 배는 속초-자루비노-블라디보스톡을 주 2-3회 왕복하는 유람선 뉴-동춘호로. 무게 13.213톤 정원 649명 화물 132톤을 싣고 최대항속 20놋트로 운항하는 선박이다. 속초- 자루비노간 운항시간은 17시간정도.
15:30시에 출발한 뉴-동춘호는 4시간동안 동쪽으로 공해상으로 나간 뒤 북쪽으로 향해 자루비노로 직행한다고, 선미로 보이는 일몰은 장관이었다.
파도도 크게 치지 않아 3층 위아래로 자는 침대에서 잠을 자기에는 벌로 불편함이 없었다. 선내식은 저녁과 아침으로 별도의 반찬 없이도 먹을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자루비노항에 도착해서 입국수속을 하는데 2시간이나 걸려서 지루함과 승객의 불만을 샀다. 자루비노항은 황망한 민둥산 허름한 창고들 국경수비대직원의 무관심해 보이는 태도 등으로 러시아에 대한 첫인상은 우리에게 실망을 안겨주었다.

4.자루비노-크라스키노세관 통관
자루비노에서 러시아세관 크라스키노 까지는 1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현대자동차에서 만든 우리나라 유치원에서 사용하던 버스에 40명씩 탑승하고 러시아국경수비대가 관리하는 벌판을 1시간동안 달렸다. 차 창밖은 억새풀과 웅덩이 참나무와 작은 관목이 깔린 벌판이었다. 중간에 지나는 마을도 잡초와 빈집들로 둘려쌓여 있고 활용하지 않는 땅이 지평선 끝까지 펼쳐있었다.
이곳은 일제시대 까지 조선족이 살던 곳으로 다리를 건너기전 왼쪽 길 옆에는 안중근 의사가 1902.2.7일 김기룡 강기순 정원주 등 11명의 동지와 함께 왼손 약손가락 첫마디를 끊어 대한독립과 국권회복의지를 천명한 단지동맹(斷指同盟)을 기념하는 불꽃모양의 기념비를 불 수있었다.(안중근 의사의 見利思義 라고 쓴 글아래손박닥 지문)
러시아에 일본이 이 땅을 넘겨준 뒤 100여년이 지나면서 조선족은 쫓겨나고 황량한 들판만이 남아 있다.
크라스키노 세관에 도착해서 통관하는데 걸린 시간은 2시간 여 철조망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화장실을 찿았으나 너무나 비위생적이어서 옆에 있는 풀섶에 생리현상을 해결하였다. 세관검색을 마치고 중국측의 장영자세관에 도착한 것은 오후4시가넘어서 였다.

5.훈춘-연길
붉은 글씨로 보아 중국국경에 도착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장영자 세관을 통관하는 데는 30여분 세관을 나오자 훈춘국제여행사에서 제공한 버스에 탑승 조선족 안내양의 안내로 중국여행은 시작되었다.
식당에 도착 오후 5시가 다 되어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두만강 권하대교로 향했다.
두만강을 경계로 강건너가 북한땅 이었다. 흰색건물이 함경북도 원정의 북한세관으로 철길을 건너가는 버스가 보인다. 우리는 저 건너 북한 땅을 언제 밟아 볼 수 있을 것인가? 가슴이 답답하다. 흐르는 강물은 김정구님의 노래를 생각하게 하고 말없이 흐르고 있다.
늙은 부인이 나뭇가지를 주어 가는 것으로 보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온돌방에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권하에는 안중근 의사가 거사전에 은거했던 초가가 초라하게 남아있었다.
기념관을 짓는다고 모금함이 있기에 성의를 표시 했다.

6.연길
이곳 조선족자치구인 연길 훈춘의 모든 간판은 위에는 한글 아래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어 조선족이 살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자치구의 조선족이 20만 인데 매년 2만명 정도가 줄어들고 있다고 안내양은 말한다. 훈춘에서 연길로 가는 길에 도문(圖們)을 보고 갈 예정이었으나 불빛으로 저 곳이 도문이라는 것만 알고 백두산을 다녀오는 길에 보기로 하고 어둠 속에 연길의 백산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저녁은 푸짐한 불고기 백반으로 된장국 맛도 우리가 먹는 음식과 다름이 없었다.
식후에는 예정대로 발 맛사지를 했다. 네 명씩 한 방에 들어 중국여자가 발을 씻겨주고 안마를 해 주는 것으로 하루의 피로를 풀고 내일 백두산에 오르는데 도움이 되었다.
호텔 방에 들어 목욕을 하고 내일 아침 6시30분에 백두산을 향해 출발 하기로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모처럼 마누라와 함께 하는 여행 앞으로 몇 번이나 이런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여행도 건강 할 때 다니라고 여가를 활용해서 두루 구경도 다녀야 ....

7.백두산 등정
그제 내린 눈이 백두산에는 쌓여있고 기온도 영하라고, 내의도 입고 점퍼도 걸치고 혹한에 대비하는 복장으로 차려입고 아침식사를 마친 뒤에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을 오르는 길에 지나야 하는 길림성 안도현의 이도백하진(二道白河鎭) 두개의 하천이 만나고 철도가 이곳까지 연결된 市급의 마을 이다.
이도백하 에서 백두산천지에 오르는 길은 봄철 고산화원을 보고 북한과 중국의 경계인 5호경계비가 있는 곳으로 오르는 서파(西坡) 코스와
차량으로 천지에 오르는 북파(北坡)코스가 있다.
우리는 북파코스로 오르기로 했다.
이도백하에서 30키로를 달려서 북파산문(北坡山門)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등산에 편리하도록 신발을 갈아신고 산문을 들어섰다.
30여명이 타는 준비된 버스로 19키로를 달려 주봉입구에 도착 했다. 그곳에는 벌써 200여명의 중국관광객이 줄을 서서 천지에 오르는 찝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위는 전나무등 침엽수림이 원시림으로 자라고 있고 기온은 갑자기 내려가서 어깨를 웅크리고 종종거름을 하고 있다.
천지에 오르는 찝차는 운전석까지 7인승으로 100여대가 운행되고 있으며 이곳에서 천지까지는 10.5키로 멀리 눈덮인 백두산이 바라보인다.
한참을 기다린 뒤에 올라갔던 찝차가 먼저 올라갔던 사람들을 싣고 내려오고 그차에 올라타고 급경사를 오르기 시작했다.
먼저 내린눈은 제설차량으로 길을 내고 한낮의 햇볕은 빙판길을 녹이고 있어 오르는 데는 별 지장이 없었다. 위로 오를 수록 자라는 나무들은 흰빛 자작나무 숲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위로 오를 수록 나무는 누어서 자라고 있었다. 자작나무 밑에 파랗게 덮인 식물은 고산에서만 자라는 백두산 만병초 라서 저절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그 귀한 만병초 푸른 카펫트 처럼 깔려있다.
어눌한 중국어로 지도를 보고 현지를 가르치며 중국인 기사에게 검은 바람이 이는 헤이펑구(黑風口)와  천지에 있는 산봉우리 텐원펑(天文峰)을 확인 했다.
구절양장의 길을 해발 2500미터 이상 오르니 나무는 없고 이끼류와 마른 풀만 보이고 바닥은 온통 검은 화산석 부스러기로 바람에 날리고 있다.
천지에 도착하여 찝차 에서 내리니 머리에 쓴 모자가 먼저 날아간다.
천문봉에 쌓인 눈들이 바람에 검은 흙과 함께 날려 눈을 뜨기가 어려울 정도,  옆으로 돌아 천지비석이 있는 곳에 이르니 천지는 꽁꽁 얼어있고 얼음위로 눈발이 구름처럼 몰려다닌다.
카메라를 꺼내 우리내외 기념촬영을 옆 사람에게 부탁 했더니 손이 얼었는지 사진이 찍히지 않았다. 눈 속에 마누라사진을 한 장 찍고 천문봉을  덜덜 떨면서 찍었는데 봉우리 한귀퉁이와 천지의 얼음이 찍힐 정도로 바람이 세다. 커피점에서 커피를 한잔하고 이내 올라오는 차에 올라타고 하산했다.
다시 구내버스로 갈아타고 장백폭포에 도착하니 멀리 폭포가 보이고 천지에 올라가는 길과 오른쪽에 龍門峰이 보인다.
폭포에 닥아 가니  흐르는 폭포수 아래쪽  바닥에서는 김이 오르고 공기방울이 올라오며 주위에 푸른색이끼류가 자라고 있고 돌은 철분을 띠고 있다. 이것이 온천수이다. 흐르는 물은 미지근 해서 손을 씻기에 알맞다.
폭포 밑에 이르니 겨울에도 얼지않은 폭포수가 굉음을 내며 흘러 두만강으로 흐르고 있다. 폭포아래 물은 손이시리고 팻트병에 담아 마시니 속이 시원하다. 천지에 오르려면 40분을 걸어 올라야 한다. 시간이 부족해서 오르지 못하고 장백폭포에서 천지물을 한병 담아가지고 돌아왔다.
내려오는 길에 90도의 온천물에 게란을 담근채 판매를 하고 있다. 천원에 게란 3개를 사서 한 개를 맛보았다. 흰자위는 완전히 익지 않았지만 노른자는 단단하게 익었다.
폭포아래 온천에서 온천욕을 한 뒤에 산문으로 이동 관광버스로 옮겨타고 이도백하의 미인송호텔에 들었다.

8.이도백하진
백두산 등정을 하루 앞당겨서 이도백하 에서 하루를 더 보내야 했다.
연탄을 아침저녁으로 때서 방을 덥히는 미인송호텔은 춥고 온수를 쓸 수가 없을 정도로 지내기가 힘들었다.
저녁에 틈을 내서 몇이 시장구경을 했다. 저녁 5시에 문을 닫는 시장은 다양한 물량이 풍부했으며 값은 저렴했다. 붓을 세 개 사가지고 돌아오다 마른 대추 1근을 3천원에 구입했다.
이도백하에 있는 미인송은 200여 그루라고 한다. 나무줄기는 백색을 띠고 곧게 자라며 아래는 가지가 별로 없어보였다.
산림박물관을 구경하고 오후에는 비도오고 해서 쉬었다.
백두산을 하루 당겨서 다녀오기를 잘 했다. 위에는 눈이 쌓여 다시 길이 막혀 오를 수가 없으니까. 백두산에 오르려다 그냥 돌아가는 관광객도 많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안내양은 우리가 덕을 많이 쌓아 복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몇 번 반복해서 이야기를 한다.
기억에 남는 것은 강원도 조선족 반점이다. 이 곳에서 청국장과 두부 음식을 맛있게 하고 고국에서 오신 손님에게 정성을 다 하고 있어 편지와 명함이 벽에 하얗게 붙어있었다.

9.용정

가.일송정. 혜란강
돌아오는 길에 용정에 들렸다. ‘선구자’ 노래를 합창하며 찿아간 일송정은 길에 버스를 대놓고 500여 미터 거리에서 산에 있는 정자를 바라보았을 뿐이다.옛날에 있었던 일송정의 큰 소나무는 세월과 함께 사라졌고 같은 계통의 어린 소나무를 대신 심었단다.
혜란강은 용정의 가운데를 흐르고 있으며 깨끗한 편은 아니었다.
이 강가에서 말달리던 선구자는 지금 한중의 흙으로 돌아갔을 것을 생각 해 본다.

나.윤동주 선생시비(詩蜱)
대성중학교를 들어서자 우선 윤동주 선생님의 시비에 마주섰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2층 기념관에 들어서자 벽에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각종 사진과 글 들을 전시 해 놓고 있었으며 여선생님 한 분이 낭낭한 목소리로 설명을 해 주신다. 대성중학교를 졸업하신 분들, 학교발전에 기여하신 분들도.
이 곳에서 항일독립운동을 했던 우리 선배들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몸을 바쳤던 의로운 선열들.
방명록에 대한민국 서울에서 온 방문객의 이름을 적고 봉투에 성의를 표했다.

10. 북한사람

가.북한상품 판매
연길로 가는 길에 북한상품 판매장에 들렸다.
차가 도착하자 한복을 차려입은 북한여자 둘이 문앞에서 어서오라고 인사를 한다.
2층에 올라가니 자수가 벽에 걸려있고. 한복을 입은 직원이 설명을 해준다.
손으로 만든 자수. 보호동물인 사향노루의 사향에 대한약효. 영지버섯 등을 설명하는데 분위기가 영 아니다. 김일성 김정일에 대한선전을 끝에 달고 말을 하는데 교육장에 들어온 기분이다.
한 사람도 상품을 사지 않고 멋쩍게 문을 나섰다.

나. 해당화식당
중국에서 마지막 저녁은 조선평양해당화식당에서 한식으로 했다.
음식은 7-8가지 다양한 음식이 차례로 들어왔으며 우리 입에 맞아 성찬을 들었다.
식사가 끝난 뒤에는 노래와 춤의 공연이 있었다.
레파토리는 8곡 ‘반갑습니다’ 로 시작해서  ‘ 다시만납시다.로 끝을 맺었다. 매스콤을 통해서 공연을 보기는 했어도 가까이서 그들의 모습을 보기는 처음,  그들은 정성을 다해서 공연을 하고 서비스를 하겠지만 어딘가 자연스럽지 못 하게 느껴 지는게 많다.
공연에 대한 성의표시는 만든 꽃다발을 사서 주는 것으로 하고 있었다.
핵실험 이후의 기류는 이곳 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11.도문(圖們)
훈춘으로 돌아가기 전에 민속마을과 도문에 들렸다.
민속마을은 젊은이 들은 모두 들에 나가고 노인들만 집에 남아있었다.
집집마다 소죽을 끓이는 가마솥을 밖에 걸어놓고 소는 밭에 놓아 옥수수대를 먹게 하고 있다. 우리가 어릴때 살던 모습과 다를게 없었다.

도문은 두만강가의 마을로 두만강을 보기위해 들리는 곳이다. 강가에 있는 배는 마음대로 강을 오르내리며 고기나 물건을 실어나르는 듯 했다. 강폭은 좁아서 갈수기에는 쉽게 건널 수있기에 탈북자가 이곳을 건너와 농사를 지은적도 있다고 안내양은 말한다.
가로수가 단정하게 손질이 되어있다. 나무이름은 비수(飛樹)라고 벤자민 비슷한데 밖에서 월동을 하는 나무이다.

이제 돌아가는 길 우리가 속초항에 도착한 다음날 강원도 일대는 또한번 폭풍우에 휘말렸다.

12.맺음말
가.보람
.백두산 천지를 보았다는 경험은 일생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훈춘.연길.용정.이도백하.두만강이 어떤곳이라는 감을 잡고.
.러시아.중국등의 국경을 통과한 경험.

나.아쉬움
.북한을 통해 백두산에 올랐으면 더욱 감회가 깊고 우리식구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을 텐데.
.태국을 여행 했을 때와 같이 보수없는 가이드가 주는 실망,보따리장사의 실태. 참깨를 들고오게 만드는 여행.

*안전한 여행을 마칠 수있어 다행이고 백두산을 다녀오도록 도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목록

장은숙님의 댓글

장은숙 작성일

  우와 참 깁니다. 다녀오신 여행이 잘 마무리되셨겠네요. 저는 여름에 다녀오면 거의 다음해 여름까지... 이렇게 미루어지던데요. 존경스럽습니다.

임영희님의 댓글

임영희 작성일

  가을 백두산이라 꽃은 많이 보지 못하셨겠습니다.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

  옴마나, 선생님요!! 눈이 겁나게 아파부네요. ㅎㅎ~ 잘 다녀오셨네요. 아직도 하실 말씀 많으시지요? 두고두고 회자하시며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선생님 덕분에 벌써부터 꽁한 겨울을 맛봅니다. 꽃은 보지 못하셨더라도 백두산에 오르셨다는 기쁨에 큰 아쉬움을 없으셨을 듯...?? 미인 사모님과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긴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만 정리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백두산에 꼭 가본다면서도 아직 결행하지 못한 천지 잘 봅니다.지난 번 우리 연구회에서 기회가 왔을 때 다녀왔어야는데 영 아쉽네요.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가고 싶다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