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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그 특별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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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이재 댓글 3건 조회 1,829회 작성일 07-07-01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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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이맘때면 친정 식구들과 함께 바깥나들이를 서두르곤 합니다.
정해진 여름휴가와 아부지의 생신 날, 가깝거나 혹은 좀 멀더라도 밖으로 나갔다 오자는 아우의
제안에 모두가 찬성을 해서 지정해 놓았던 지라, 몇 해째 행사처럼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쨍한 햇살을 정수리에 이고 시골길을 달려 우선 이모님 댁으로 향했습니다.
웬만한 장정 서넛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두 분 다 칠순을 넘기셨음에도 그동안 쌓은 노하우로 
거뜬하게 논농사며 밭농사, 특수작물까지 해치우십니다.
가서 뵐 때마다 놀라지 않을 수 없지요. 
어제도 푸징가리??(ㅋ~) 실컷 뜯어서 비닐봉지와 푸대에 나눠담고 덜 익은 자두도 따 먹고,
여섯 시 쯤 두 분을 모시고 바닷가 근처 장어집으로 갔습니다.
원래는 우리 엄마가 왕 언니였는데, 나중에 오신 지금의 엄마가 이모님보다
열네 살이나 아랩니다. 울 아부지 처복이 좀 있으시거덩요.ㅋㅋ~
우리 이모님, 그래도 꼬박꼬박 지금의 엄말 "언니"라고 불러주십니다.
"내가 느그 엄마한테 잘 하는 것은 다아 느그 아부지, 바로 내 형부 때문이여!!" 크흐~
두 시간에 걸쳐 저녁을 먹고, 이모님 내외분 모셔다 드리고나니 완전히 깜깜한 밤입니다.

아우 네서 자고 아침이 되자 간단하게 쥬스 한 잔씩 만들어 쭈욱 들이키곤 다시 친정으로 향했지요.
비도 오고 출출한데 점심 때 팥칼국수나 밀어먹자는 내 제안이 수락되어 다시 모였습니다.
힘 좋은 남정네들한테 밀가루 반죽을 대충해서 잘 주무르라 이르고, 엄마가 미리 곤 팥을 걸르고 끓여
커다란 솥에 올려놓고 홍두깨로 쓱쓱 밀어서 늘인 개떡?을 돌돌 말아 썰었습니다.
뽀옥~거품을 내며 끓인 팥칼국수를 두 그릇 뚝딱!! 들어갔던 배가 벌떡 일어섭니다.ㅎㅎ
아부지도 하실 일이 있어야 한다며 커피를 끓이십니다. 울 아빠 표 조제 커피 맛!! 기똥찹니다.흐~
후식으로 수박을 썰어 또 몇 조각, 방울토마토 몇 알...도저히 혼자는 못 일어납니다. 낑낑!!
 
아부지의 생신이 여름이 시작되는 계절이라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과일이라든지 먹을거리가 
그리 많지도 않았고, 있더라도 좀 비싸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채소며 과일들이 지천입니다.
풍부해지니 싸기도 하지만 맛도 좋아 실컷 먹고 즐겼는데, '이래도 괜찮은 걸까?' 
문득 뜻밖의 걱정이 되는 겁니다.
우선 먹기엔 곶감이 달다고 내 머리통 두 배 크기의 수박이며 참외, 복숭아 등등 아직 제 철이라기엔 
분명 때 이른 곡식들과 마구 쏟아진 과일들을 그저 생각 없이 먹기만 해도 되는 것인지...

웃고 떠든 사이, 어젯밤부터 제법 쏟아지던 비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자 몸과 마음이 느긋해진 
나는 아부지가 재미로 가꾸시는 베란다엘 나가보았습니다.
봄에 핀 꽃들은 이미 다 지고, 잎들만 무성한데 어디선가 향기가 솔솔 무딘 내 코를 자극합니다.
수국!! 개화기간이 참 기네요.
저번에 왔을 때도 활짝 웃고 있더니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은 걸 보면 말입니다.
깨끗한 흰 빛(白色)으로 무성화, 유성화 서로 다투지도 않습니다.
분양해 주신 분이 '화란수국'이라고 가르쳐주셨는데 이렇게까지 효자 노릇할 줄은 솔직히 몰랐지요.  
"이쁘쟈? 꽃이 참 오래 가는구나. 낭창낭창한 줄기가 너무 커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분에 비해 훌쩍 키를 쑥 키워버린 수국이 은근히 걱정되시는지? 아니면 자랑이신지...?

원예용 고추를 해마다 씨 받아 기르곤 하시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한 켠에 그 손바닥만한 화분이
놓여있습니다. 더도 말고 꼭 손가락 길이만큼 자랐는데 글쎄 지줏대를 덧대신 폼이
어찌나 재미난 지...이쑤시개를 꼽아 실로 살짝 묶어두셨는데 그 모습에 감탄을 했습지요.
ㅍㅎㅎ~, 아주 가끔, 울 아부지 때문에 참 많이 웃습니다.
호탕하게 웃는 걸 좋아하시는 아부지신지라 나도 울 아부지 앞에선 그렇게 대놓고 깔깔거리는데,
오늘도 그랬네요. 

속으로 빌었습니다. 평생에 아부지한텐 애물단지인 딸...맏이면서도 한 번도 맏이 노릇을 
한 적이 없었지요. 딸이라 가르치지 못했다는 자책으로 울 아부지는 평생 가슴앓이를 하셨습니다.
이젠, 여기저기 편찮으신 데가 많아 건강신호에 적색경보가 깜빡이고...
더도 말고 내 집을 가질 때까지 만이라도 건강하게 살아계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일지 약속은커녕 기약조차 까마득한...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늘 또 마음만 이렇게 졸입니다.
꺾여진 구십인데 장가도 안 가고 먼 타국으로 훌쩍 떠나 홀로 고생하는 큰 아들,
맏딸, 둘째 딸(셋째), 시집 간 지가 수 십 년인데 집도 없이 고생바가지 억수로 하고,
올봄, 마흔 다 되어 늦장가 간 막둥이 아들...그나마 한시름 놓으셨을까요?

엄마 산소엘 가면 아무도 몰래 눈물을 훔치십니다.
큰 딸은 보고도 못 본 척...부러 큰 소리로 아이들 걸음만 재촉하지요.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요.
입은 웃고 있는데 눈에서는 찔끔찔끔 눈물이 솟습니다. 
그러는 날들이 더 자주 생겨나네요.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서서히...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랑이 샘솟고 있음을 알아가는 것은 아닐까요?
 
살아있는 사람에게, 곁에 있는 사람에게 오늘 하루쯤,
사랑한다고 고백해보시면 어떨까요...?
**

배경음악 / 마음의 문을 열고

댓글목록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참 특별한 가득찬 하루가 또 그렇게 어제가 되는군요.기쁜 마음으로 읽어야는지 아픈 마음으로 읽어야는지 분별도 못하고 가슴이 먹먹해지네요.구십이 다 되어가시는 어머니를 두고도 자주 찾아뵙지도 못하는 막심한 둘째아들의 마음이 아파지려 합니다.태어나 자란 시절이 사랑한다는 말을 하면 큰 일나는 곰팽이 냄새나는 세대라서 여시떠는 딸래미나 이제
네 살로 방실거리는 외손녀한테는 사랑해라는 말을 자주 배우고 손녀한테는 답례도 할줄 알게된 골방 샌님.속내와는 달리 왜 그리도 사랑한다는 말이 어렵고 입에서 떨어지지 않는 겐지요. 특별하지만 매우 뜻깊은 하루의 잔잔한 행복 잘 보고 가슴이 젖어 읽었습니다.

이향숙님의 댓글

이향숙 작성일

  어버이 살아계실제 섬기기란 다 하여라~~누구나 암송하고 있는 일임에도 행동은 늘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으니 저도 마음만 먹먹합니다...아흔 둘 되시는 어머니 모시고 살면서 아직도 막내인 티를 내고 있으니 문득 문득 정신이 들다가도~원 위치~늘 부족하기만 하네요...어르신 건강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장재우님의 댓글

장재우 작성일

  음악소리 참 맘에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