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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쭈물 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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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이재 댓글 5건 조회 2,115회 작성일 07-08-14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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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시작되던 1월, 경주에 계시는 스님과 인연이 닿아 잠시 다녀왔었다.
그때 객방으로 쓰던 요사채를 잠시 내주시어 일행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었는데,
단아한 찻상 위, 해우소 문 앞, 미닫이 출입문 유리창에서 지금 내가 빌려쓰는 제목의 글귀들과 만났다.
모두가 공감했던 터라 기억에 남았었는데, 엊그제 짧은 여행길에서 다시 그 말을 듣게 되었다.

선잠에서 깨어나 조금은 찌뿌둥한 몸을 뉘인 채, 서쪽으로 난 작은 창에 붉은 빛이 감도는
시간까지도 잠자리를 털지 못하고 있었다.
참 오랫만의 외출이라 혼자라도 잠시 나갔다 올까 싶은 마음에 손에 꽉 쥐어지는 작은 카메라 하나를
들고 간단한 행장을 차리니 혼자 보낼 수 없노라시며, 한 분이 일어나 동행을 자처하신다.

낯선 마을, 인가가 별로 없는 곳이라 아직은 고요가 깨어나기 전이다.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아득히 들린다.
고개 하나를 너머 쏜살같이 달리는 해를 따라 애마를 채찍질해 아침빛살과 마주했을 때는
성큼 하늘로 내딛는 걸음이 제법 멀어진 후다.
앗차!! 조금만 더 빨리 서두를 걸...

장마가 끝난 8월은 덥더라도 땡볕이 내리쬐야 한다.
6,7월에 잉태했던 곡식의 낱알들을 익혀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태양에게 있기 때문이다.(ㅎ~억지가 좀 심한가요?)
헌데 올해는 예년만큼의 비 피해가 없어 다행이긴 하지만, 우기의 8월이 되었다.(남부지방은 대체로 비껴갔지만.)

점심을 한 시간 쯤 남겨두고 임원진이 던지는 말,
"오늘 점심은 회사에서 쏩니다." 엥? 이게 뭔 횡재?? 깜짝 쇼에 눈을 껌뻑이며 의아해 하는데,
글쎄 말복이라네? 헉~~~
옆 동료, 놀라는 내 얼굴을 보더니 던지는 한 마디, "입추 지났어요!!" 

지나간 내 삶을 대변하는 말,
** 우물쭈물 하다가 내 그럴 줄 알았지.
(덧붙임-'우물쭈물...알았지'는 버나드 쇼의 비문에 새겨진 글이랍니다.)

댓글목록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지난 주말 다들 새벽 일출에 반하였다고 하는데 그때 전 잠에 빠져 있었는데... 사진을 보니 저도 새벽에 걸어보고 싶어 집니다. 예전에는 매일 그렇게 다녔는데...

이향숙님의 댓글

이향숙 작성일

  우물쭈물 하다가 그렇게 가 버리는게 이승의 삶이 아닐까 싶지요~? 뒤 돌아 보면 소득없는 빈 시간들만 흘려 낸 듯 싶고~~맛깔스런 이재님의 글 읽는 재미라도 좀 주세요~ㅇ^^*

김장복님의 댓글

김장복 작성일

  언제나 한발 뒤늦는 자신에게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하고 자위해봅니다.ㅎㅎ.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

  눈과 가슴엔 훨씬 멋진 작품으로 새겨졌는데 사진도 글도 참...표현도 마음 먹은대로 안 되네요. 어딘가를 향해 떠나고, 누군가를 만나고...얼마나 가슴이 설레는 일인지요.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 만큼 행복한 일은 없겠지요. 어여삐 보아주신 님들께 감사말씀 올립니다. _()_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눈이 아프도록 바라보고 가슴이 시리고 저리고 설레도록 바라본 그 느낌을 디카엔 담을 수 없지요.마음 가득히 갈래갈래 까지 스며든 그 내음을 아무리 절절하게 써봐도 늘 아쉽고 부족함만 남지요.허나 이재님이나 남명자님의 글은 잔잔히 흐르고 한미순님은 고운 가슴이 뚝뚝 떨어지는 아름다운 글을 쓰더군요.남정네들이야 늘상 그러하듯 덜렁덜렁 몇 마디 남기곤 아쉬움만 삼키지요.저도 우물쭈물 하다가 그럴줄 몰랐던 삶도 아니었건만 '혹시나' 하면서 살았어도 역시 '역시나'만 남는 아쉬움 가득하고 그리움에 가슴 시리고 서러움에 잠기는 가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