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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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윤영 댓글 17건 조회 2,237회 작성일 07-11-17 22:34본문
오후엔 집의 울타리가 시원찮아 손을 좀 봤습니다.
우리 앞에 살던 사람이 울타리 바깥에 손보지 않고 묵혀 둔 아주 작은 땅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내년에 밤나무나 감나무 두어 그루라도 심을까 싶어
그쪽으로 갈 수 있도록 쪽문을 하나 만드느라 울타리를 자르고 엮고
한나절 내내 쪼물딱 거렸더니 제법 쓸 만한 문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연장을 정리하고서 내려오는데
이젠 제법 친한 이웃이 된 종은이 할머니께서 대문 앞에 오셔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무를 다 뽑았냐고 소리치십니다.
아직 마당에 그냥 있다고 했더니 당신도 바쁘시지만
아무래도 안 뽑았을 거 같아 달려왔다면서 지금 당장 뽑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아직 김장은 좀 있다가 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그래도 내일 아침엔 영하로 내려가니 오늘 뽑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늦게 심은 놈이라 뭐 먹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어라 제법 모양을 갖춘 게 김장을 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습니다.
무청도 싱싱한 게 시레기를 만들면 아주 맛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짓는다는 무농사가 우리것보다 훨씬 낫네."하시며 할매가 칭찬까지 해 주시네요.
저녁도 안 지어놓고 오셔서 마음이 바쁘다는 할머니를
마눌이 차로 집까지 빨리 모셔다드리고 무를 한 아름 안겨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무를 그냥 두면 얼어서 못 먹는다며 비닐 부대까지 챙겨 오셨네요.
어둑해지면서 거짓말처럼 날이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금방 겨울 기분이 듭니다.
무청을 잘라낸 무를 비닐에 담아 집안에 들여 놓았습니다.
한 놈을 씻어서 마눌과 깎아 먹어 보았는데 날 걸로 먹어도 시시한 고구마보다 맛났습니다.
"야, 이놈으로 김장 담그면 올해 김치는 무지 맛있겠다."
둘이 마주 보고선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래 오늘 오후에 서울엘 가려다가 일이 틀어져 못 갔는데
서울에 갔더라면 맛난 무 다 얼려 버릴 뻔했습니다.
내일은 무청을 엮어서 차고 아래에 주렁주렁 달아 놓아야지요.
하는 일 없이 바쁜 초보농사꾼입니다.
종은이 할매가 그저 고맙습니다.
저녁엔 무생채와 호박볶음에 된장을 넣고 비벼 먹었습니다.
아휴, 배불러.
약 오르지요?^^*
댓글목록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허 ㅎㅎ.....중부라서 이제야 무를 뽑았네요.무우와 여자는 바람이 들면 못쓰게 된다는 속담이 있다는 걸 모르셨나요?ㅋㅋㅋ.....무가 얼면 속에 구멍이 숭숭 생겨 못쓰게 되는 걸 바람이 들었다고 하지요.저는 지난 주에 김장 마쳤습니다.무청은 그늘에 걸어 말리는 게 좋은줄은 아시겠지요?
문인호님의 댓글
문인호 작성일
뒤에 짚으로 배추 묶은 솜씨를 보니 초보농사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귀농 첫해에 무우를 심었다가 거름이 부족하여 모두 알타리무우로 수확했었습니다.
이태규님의 댓글
이태규 작성일토질이 좋은가요.. 무우가 단단해 보이는것이 동치미감으로 최고로 보여 집니다.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예, 초보농사꾼이긴 한데 토질이 좋아 관리기로 좀 깊게 파고 심었더니 생육기간이 짧았는데도 제법 쓸만한 놈이 나와서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한미순님의 댓글
한미순 작성일에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요 저도 총각김치를 그제 춥기전에 담을껄....얼지 않았나 몰겠네요 ㅠㅠ
서말구슬님의 댓글
서말구슬 작성일부럽습니다.. 무 뿌리가 저 정도면 올해 추위는 어느정도 일까요^^*...
김용환님의 댓글
김용환 작성일초보농사꾼의 생활이 즐거우시겠습니다. 수확물도 먹음직스럽습니다.
이한윤님의 댓글
이한윤 작성일풍성해보입니다. 제가 무우 김치를 엄청 좋아하지요^^
전경녕님의 댓글
전경녕 작성일배추는 좀 어설픈데 무는 먹기에 딱 좋은데요.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장마 지난 뒤에 심은 거라 배추나 무가 썩 좋지는 않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이향숙님의 댓글
이향숙 작성일농사 잘 지으셨네요~~~올해 배추는 포기가 안 찼다고 그러시더만요 모두들~^^*
이금선님의 댓글
이금선 작성일초보 농사를 저리 잘 지으셨으니 벌써 내년이 기대됩니다.^^
주경숙님의 댓글
주경숙 작성일
어릴적 화단 한쪽에 내 키보다 더 깊은 구덩이를 파서 무 를 저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긴 겨울밤에 할머니께서 하얀무를 수저로 긁어 한입씩 주시던 그맛이 정말 시원하고 아삭아삭 했지요
김익중님의 댓글
김익중 작성일무, 어디 묻을 거예요? ㅎㅎㅎ, 무 서리 가야겠다.
남명자님의 댓글
남명자 작성일우와 그녀석 무 참 자알 생겼다. 울집 무는 어른 ㅂ주먹만 해서 그리 쓸모가 없을 것 같네요. 작년에 무가 너무 실해서 갈무리하기 힘드셨다고 엄니가 며칠 늦추어 씨를 부으시더니...에공.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올해는 무가 모두 시원찮다고 하더라고요. 김익중님 안 됐습니다. 묻지도 않고 모두 김장 담고 나머지는 실내에 보관해 두렵니다.^^*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윗 지방에 비해 남도는 김장이 좀 늦는 편인데요, 그래도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나와서 빨리 담그는 집도 생겼더군요. 아직 첫눈도 내리지 않았고, 중간에 좀 추운 날이 있었지만 그래도 햇살 따스한 요즘입니다. 김장도 12월 중순 넘어서 하는 집이 많아 지금 저 정도의 배추도 이곳에선 기다려 볼 만한데...ㅎㅎ 잔손이 많이 가시겠지만, 뿌듯한 날을 보내고 계시네요. 즐거운 일상을 엿보는 마음도 더불어 즐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