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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설픈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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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윤영 댓글 17건 조회 2,229회 작성일 07-11-17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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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엔 집의 울타리가 시원찮아 손을 좀 봤습니다.
우리 앞에 살던 사람이 울타리 바깥에 손보지 않고 묵혀 둔 아주 작은 땅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내년에 밤나무나 감나무 두어 그루라도 심을까 싶어
그쪽으로 갈 수 있도록 쪽문을 하나 만드느라 울타리를 자르고 엮고 
한나절 내내 쪼물딱 거렸더니 제법 쓸 만한 문이 하나 만들어졌습니다.
 
연장을 정리하고서 내려오는데
이젠 제법 친한 이웃이 된 종은이 할머니께서 대문 앞에 오셔서 뭐라고 소리를 지르십니다.
무를 다 뽑았냐고 소리치십니다.
아직 마당에 그냥 있다고 했더니 당신도 바쁘시지만
아무래도 안 뽑았을 거 같아 달려왔다면서 지금 당장 뽑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아직 김장은 좀 있다가 할 생각이라고 했더니
그래도 내일 아침엔 영하로 내려가니 오늘 뽑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늦게 심은 놈이라 뭐 먹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어라 제법 모양을 갖춘 게 김장을 담가 먹을 수 있을 만큼 자랐습니다.
무청도 싱싱한 게 시레기를 만들면 아주 맛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짓는다는 무농사가 우리것보다 훨씬 낫네."하시며 할매가 칭찬까지 해 주시네요.

저녁도 안 지어놓고 오셔서 마음이 바쁘다는 할머니를
마눌이 차로 집까지 빨리 모셔다드리고 무를 한 아름 안겨 드렸습니다.
할머니는 무를 그냥 두면 얼어서 못 먹는다며 비닐 부대까지 챙겨 오셨네요.
어둑해지면서 거짓말처럼 날이 제법 차가워졌습니다.
금방 겨울 기분이 듭니다.

무청을 잘라낸 무를 비닐에 담아 집안에 들여 놓았습니다.
한 놈을 씻어서 마눌과 깎아 먹어 보았는데 날 걸로 먹어도 시시한 고구마보다 맛났습니다.
"야, 이놈으로 김장 담그면 올해 김치는 무지 맛있겠다."
둘이 마주 보고선 회심의 미소를 지었습니다.^^*
 
원래 오늘 오후에 서울엘 가려다가 일이 틀어져 못 갔는데
서울에 갔더라면 맛난 무 다 얼려 버릴 뻔했습니다.
내일은 무청을 엮어서 차고 아래에 주렁주렁 달아 놓아야지요.
하는 일 없이 바쁜 초보농사꾼입니다.
종은이 할매가 그저 고맙습니다.

저녁엔 무생채와 호박볶음에 된장을 넣고 비벼 먹었습니다.
아휴, 배불러.
약 오르지요?^^*



댓글목록

이길영님의 댓글

이길영 작성일

  허 ㅎㅎ.....중부라서 이제야 무를 뽑았네요.무우와 여자는 바람이 들면 못쓰게 된다는 속담이 있다는 걸 모르셨나요?ㅋㅋㅋ.....무가 얼면 속에 구멍이 숭숭 생겨 못쓰게 되는 걸 바람이 들었다고 하지요.저는 지난 주에 김장 마쳤습니다.무청은 그늘에 걸어 말리는 게 좋은줄은 아시겠지요?

문인호님의 댓글

문인호 작성일

  뒤에 짚으로 배추 묶은 솜씨를 보니 초보농사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귀농 첫해에 무우를 심었다가 거름이  부족하여 모두 알타리무우로 수확했었습니다.

이태규님의 댓글

이태규 작성일

  토질이 좋은가요.. 무우가 단단해 보이는것이 동치미감으로 최고로 보여 집니다.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예, 초보농사꾼이긴 한데 토질이 좋아 관리기로 좀 깊게 파고 심었더니 생육기간이 짧았는데도 제법 쓸만한 놈이 나와서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한미순님의 댓글

한미순 작성일

  에혀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네요 저도 총각김치를 그제 춥기전에 담을껄....얼지 않았나 몰겠네요 ㅠㅠ

서말구슬님의 댓글

서말구슬 작성일

  부럽습니다.. 무 뿌리가 저 정도면 올해 추위는 어느정도 일까요^^*...

김용환님의 댓글

김용환 작성일

  초보농사꾼의 생활이 즐거우시겠습니다. 수확물도 먹음직스럽습니다.

이한윤님의 댓글

이한윤 작성일

  풍성해보입니다. 제가 무우 김치를 엄청 좋아하지요^^

전경녕님의 댓글

전경녕 작성일

  배추는 좀 어설픈데 무는 먹기에 딱 좋은데요.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장마 지난 뒤에 심은 거라 배추나 무가 썩 좋지는 않답니다. 그래도 이게 어딥니까?^^

이향숙님의 댓글

이향숙 작성일

  농사 잘 지으셨네요~~~올해 배추는 포기가 안 찼다고 그러시더만요 모두들~^^*

이금선님의 댓글

이금선 작성일

  초보 농사를 저리 잘 지으셨으니 벌써 내년이 기대됩니다.^^

주경숙님의 댓글

주경숙 작성일

  어릴적 화단 한쪽에 내 키보다 더 깊은 구덩이를 파서 무 를 저장했던 기억이 납니다
긴 겨울밤에 할머니께서 하얀무를 수저로 긁어 한입씩 주시던 그맛이 정말 시원하고 아삭아삭 했지요

김익중님의 댓글

김익중 작성일

  무, 어디 묻을 거예요? ㅎㅎㅎ, 무 서리 가야겠다.

남명자님의 댓글

남명자 작성일

  우와 그녀석 무 참 자알 생겼다. 울집 무는 어른 ㅂ주먹만 해서 그리 쓸모가 없을 것 같네요.  작년에 무가 너무 실해서 갈무리하기 힘드셨다고 엄니가 며칠 늦추어 씨를 부으시더니...에공.

정윤영님의 댓글

정윤영 작성일

  올해는 무가 모두 시원찮다고 하더라고요. 김익중님 안 됐습니다. 묻지도 않고 모두 김장 담고 나머지는 실내에 보관해 두렵니다.^^*

이이재님의 댓글

이이재 작성일

  윗 지방에 비해 남도는 김장이 좀 늦는 편인데요, 그래도 요즘은 김치냉장고가 나와서 빨리 담그는 집도 생겼더군요. 아직 첫눈도 내리지 않았고, 중간에 좀 추운 날이 있었지만 그래도 햇살 따스한 요즘입니다. 김장도 12월 중순 넘어서 하는 집이 많아 지금 저 정도의 배추도 이곳에선 기다려 볼 만한데...ㅎㅎ 잔손이 많이 가시겠지만, 뿌듯한 날을 보내고 계시네요. 즐거운 일상을 엿보는 마음도 더불어 즐거워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