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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콩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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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olive 댓글 15건 조회 2,240회 작성일 03-11-08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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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호지 바른 문구멍이 하나 너져븐 하게 뚫어졌다
바람 찬  입동즈음에
문 살을 따라서 반듯하게 방문 한 칸을 얌전히 필통의 칼로 잘라내고
그 작은 방문 칸을 두어 칸 바른다
책갈피에 곱게 눌러 둔 작은 코스모스나 아기단풍잎을 한지에 발라 맞춤 하게 바른다
변덕스러운 구름이 유난히 빛을 환하게 내놓을 때 방문에 비친 고운 꽃이 선명해진다
손을 깨끗하게 씻고 방 윗목에 놓여진 검은 질그릇 시루에 다가 간다
커다란 고무대야 위엔 튼튼한 참나무 가지 갈래진 부위의 Y자 부분을 잘라 만든
반질반질 오래된 나무 밭침 위에 얹혀진 검은 질그릇 시루를 덮은 베 보자기를 걷어내고
조롱박으로 고무대야에 있는 물을 끼얹기도 하고 더러는 새 물을 뿌려주기도 했다
검은 질그릇 시루 안에는
예쁘고 노오란 콩 머리들 음표처럼 세우고 있는
여린 콩나물들이 총총 박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는 광으로 들어가 시렁 위에 놓여진 강정 소쿠리들을 쳐다본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아주 얇다랗게 밀고 잘라서 따뜻한 곳에서 말리며 발효하여
끓는 기름에 일궈낸 뒤 고명을 묻혀낸 한과나
뻥튀긴 콩에 갱엿과 설탕을 녹이다가 매콤한 생강즙을 조금 넣기도 하고 늘어붙지 않도록 콩기름도 조금 넣어
고소하게 뻥튀긴 콩을 넣고 섞어 판판하게 고른 뒤 굳으면 자른 콩강정, 깨강정 따위..
송화 다식,흑임자 다식, 멥쌀다식,콩다식.. 사 먹는 군것질 거리가 거의 드물고 거즘 만들어 먹던 간식 군것질거리..

오후의 햇살이 한창인 뒤란 튓마루에서는
역시 커다란 고무대야 위에 역시 반질반질한 참나무 갈래진 밭침 위에 맷돌이 앉혀져서
하룻밤 불린 노오란 콩들을 땀 흘리듯 거픔 하얗게 갈아내놓고 있고
맷돌을 잡은 굵은 팔뚝의 어른들은 힘든 표정도 없이 두런두런 깔깔 납작 웃음 터트리며 리듬을 맞춘다
이따금 불린 콩 반 국자를 넣어보마 사정하여 한번 해 보지만
돌리는 맷돌 리듬을 찾지 못해 기어이 돌리기를 멈춘 다음에야 한번 넣어보며 어른들을 성가시게 한다
큰 가마솥을 닦으랴 갈아낸 콩 물 퍼 날라, 아궁이 불지펴 끓어오르면 찬물 한바가지씩 부어가며 끓이다
이윽고 수증기 뽀얗게 피어올라 분간할 수 없는 부엌에서 자루에 담겨진 뜨거운 콩물이 줄줄 땀처럼 흐르고
그 젖빛 뽀오얀 콩물을 온도 맞춤 하게 아궁이에 솔결을 조금 피운 뒤
바가지에 희석한 간수를 넣어 돌리면 구름 일듯이 몽글몽글 엉키는 순두부, 맑아지는 콩물..
사랑채에는 뜨거운 순두부에 갖은 깨소금 간장양념 준비하여 한 그릇씩 놓여진 상이 차려지고
부엌 아낙들은 그저 그 자리에서 앉은 채, 선 채 뜨거운 순두부 한 그릇을 들고 먹으면서
고소하네 구수하네 얼큰하네 알 수 없는 말들로 두부가 잘 되었음을 서로 자축하고
두부는 베 보자기 깔고 사과상자나 네모진 용기에 담겨져 얌전히 베 보자기 덮고
참나무 갈래진 걸 얹고 맷돌을 얹고 그렇게 눌려진 뒤 네모지게 잘려져
찬물 가득한 큰 대야에 담그는데 그래야 잡물이 빠져나가 두부 맛이 좋기 때문이고
저녁 찌개 메뉴로는 두부돼지고기 찌개를 하기도 한다
동네 어른들이 잡은 돼지는 이때쯤 이미 이런 저런 갈무리 후에도 남은 큼직한 덩이가
높다란 곳에 매달려 핏물이 똑똑 떨어지고 있고
무딘 부엌칼도 무섭게 갈려져 있어 삭삭 돼지고기 덩이를 베어내 숭숭 잘게 썬 살점에 밑간을 하고
간단한 야채와 함께 볶듯하다가, 물 붓고 끓이며 도톰도톰 얌전하게 썬 두부를 넣어
양은 솥 한가득 냄새도 좋게 얼큰하게 끓으면 어슷어슷 썬 대파를 넣고
국 간장 가져와라 소금 가져와라 고춧가루 더 넣을까.. 하는 곳에서 나는,
검은 질그릇 시루에서 뽑아낸 콩나물 데쳐내 조물조물 무친 콩나물 무침, 그 고소한 간을 본다
검은 윤기 자르르 나는 김을 참기름 섞인 콩기름에 발라 소금 맞춤 하게 뿌려 재었다가
숯불에 두 번 바싹 하게 구워낸 김 구이 자르는걸 도와준다, 바쁘다..
때로는 엉글게 만든 석쇠에 굴비며 전어며 갈치며 그런걸 용케 혼자 잠깐 굽기도 하고..
이 때쯤, 밖에서는 피워진 숯불에 아무렇게나 썬 돼지고기를 구워먹는 사람들도 있고
젓갈 넣어 금방 무친 매운 겉절이에 막걸리 한 주전자 더 내가고..
그렇게 이미 약주 한잔 한 남자들에게 밥상이 차려져 내간다
밥을 퍼낸 가마솥에서
커다란 주걱으로 들들 긁어 동그랗게 꽁꽁 주물러 콩 누룽지를 내놓고
물을 붓고 아궁이에 솔결을 조금 지펴 구수한 숭늉을 만들어 내고
식어가는 숭늉처럼 밤 깊어 간다

아침 일찍부터
메주를 만들기 위해 불려놓은 콩들을 커다란 가마솥에 들어다 붓고
오래오래 장작불을 지펴 콩 삶는 내음 하루종일 번져 나면
큰 절구통에 김 설설 오르는 삶은 콩들이 부어지고 커다란 절굿대로 콩을 찧는다
더러 덜 찧어진 콩알들 듬성듬성 보이는 네모난 메주덩이 따뜻하고 말랑한걸 나르다
손자욱만 쿡 찍어놓고 무안해서 내빼기도 한듯하다..
균일하게 늘어놓은 메주덩이 들이 가득한 빈방에 햇빛이 밝게 들고 몇일 지나서
짚으로 메주를 묶어 높은 곳에 열을 지어 내내 매달아 놓아 곰팡이 피고
오래 오래 지나 메주가 익으면 어느날 메주들을 물에 넣어 짚세기로, 솔로 씻는다
씻어 건져진 메주 덩이들은 또 햇빛에 말려지고
큰 항아리들은 장독대에서 들려 나와 씻겨지고, 묵은 항아리에는 짚으로 불 피워 연기로 살균을 하고 햇빛에 소독을 한다
다시 시루가 앉혀지고 아주 고운 베 보자기가 깔리고 천일염이 푹푹 한 바가지씩 부어지고
물을 붓고 하여 시기별로 조그씩 농도 다른 소금물을 만들어 놓고
불순물 없는 윗물을 떠서 메주를 넣은 항아리에 붓는다
마른홍고추, 숯,.. 이런걸 넣은 간장 독 테두리를 다시 짚으로 둘러 묶는다
이렇게 오래 숙성을 시킨 뒤 또 날을 골라 메주 간장 가르기를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
이 날의 풍경은 너무 소중한 모습이라 다시 ..

ㅡ 콩 심은 곳에 콩 난다는데
나는 사실은 팥도 콩도 심는걸 본 적이 없다
다만 어느날 콩밭의 콩이 자라나면
흙을 북돋워 주며 콩밭 매는 어른들 몰래 가끔 뽑아보곤 했는데 그건
언젠가 보니 콩 뿌리에 흙으로 만든 작은 콩처럼 생긴 것이 붙어있는 걸 본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마늘도 커 오르면 마늘통이 언제 생기는지 종종 뽑아보곤 했는데 덕분에
지금도 마늘 대의 빛깔만 보고도 통마늘 장아찌 담그는 최적의 시기를 알고 있고
 감자가 맺히고 굵어지는 것도 감자 잎사귀 색조를 보면 대략 알 수 있고..
하여튼 장난감이 없어 그런 것이지 내 잘못이 아니다
어른들이 읽는 삼국지나 중국 정통 SF물의 무협지 따위를 읽은 것도 그렇고,
장난감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 장난감을 구해야 했던 일 일뿐 잘못이 아니다..
지금도 나는 장난감이 없어서 그런지 
인삼 밭을 지날 때, 인삼 뿌리가 얼마나 크고 있을까 궁금해져 뽑아보고 싶을 때가 있고
함박꽃인지 목단인지 그 꽃이 필 때 그 큰 봉우리를 슬쩍 살살 젖혀 까보기도 하는데
어떤 색 꽃이 피려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콩 꽃이 필 즈음인가 그 이전인가 가끔 재미있는 놀이가 있는데 바로 콩 순을 자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여린 순을 자르는 것이 일이라는 걸 알게 되자 더 이상 재미있지도 않았고,
손톱 끝 언저리가 몹시 아프게 느껴져
냄새 좋은 호두나무 잎이 일렁이는 호도나무에 올라 놀았었다 ㅡ


어느 농가에서는 입동 즈음의 지금쯤
소반에 콩 펼쳐놓고 둘러앉아
실꾸리 같이 꾸리꾸리 이어지는 할머니들의 이야기 두런두런
터져나는 웃음들도 고르는 콩처럼 구를테지...

댓글목록

이요조님의 댓글

이요조 작성일

  bae 50 ja~~~ 반굉일은 참말 쉬나하고 와떠니.... 근데 올리브여~~(지가 연상이란 가정하에) 대테 당신은 누구신교? 이, 리터엉 할멍도 잘 모르는 일들을 우예???? 공개하기 정 머하믄 폰 때리쏘....

이영주님의 댓글

이영주 작성일

  시골에서 자란것이 얼마나 많은걸 알게 하는지 이제사 깨딣는 나

우정호님의 댓글

우정호 작성일

  어릴적 두부하러 따라 간 것이 기억이 납니다. 두부가 언제 되냐 기다리면서 소금을 왜 넣는지도 모르면서 그것 넣어면 두부가 형태를 만들더군요

매천님의 댓글

매천 작성일

  ㅎㅎㅎ 두부할때 넣는것은 소금이 아니라 소금가마에서 조금씩 밑으로 나오는 물을 받아모은 이름하야 간수란 것이래요 ... 간수의양조절에 따라 두부가 단단해지거나 물러지거나 하는데 그 양조절하는게 웬간한 기술로는 할수없답니다..... 아직울집엄마는 집에서 손수농사지은 콩으로 손두부 만들어 먹걸랑요....

최명순님의 댓글

최명순 작성일

  그저 감탄할 따름...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전번의 매실에 이어 이번엔 콩. 그 일사천리의 수려한 표현에 탄복합니다.  군더더기 없이 잘 다듬어지고 간결하면서도 내용전달이 명확함에... 나타나길 고대합니다.

olive님의 댓글

olive 작성일

  숙녀님 금강산에 비 내리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시골에서 자란 시기는 참 행복했습니다 ..성격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듯 합니다 / 일반 도시 가정집에서도 쉽게 만듭니다 맷돌도 필요없고 믹서로 왕왕 갈아서 간편하게..슈퍼에서 파는 두부콩이 수입이 대부분이라 ../ 천일염 소금 가마를 보통 이삼십 가마 들여놓고 살았던듯 합니다..엄청 간수도 많이 받고요..받아내야 하는거고 소금맛이 좋아지니까요.. 간수 넣을때 콩물 온도는 70도 내외 유지..간수는 콩단백 응고시킬 분량, 단단하게는 누르는 정도../ 명순님 울 집에 놀러오셈^^** 두부 전골 해줄께염.. / 김귀병님 어설픈 기억의 스켓치 ...장황하고 부끄...  / 토요일인데... 젖은 단풍빛이 곱습니다..

김귀병님의 댓글

김귀병 작성일

  콩 한마디 더.  어릴 적 집에서 메주쑬 때 삶은 콩을 한 움큼 입에 넣고 오물거리던 기억....  콩 중에서 제일 맛있던 것은 알콩달콩,  먹을 만한 했던 것은 베트콩.

olive님의 댓글

olive 작성일

  ★ 이 공간 게시판을 무료로 이용하는게 어쩐지 조금 걸림.. 그런데 염치없는 바램이 있는데 ..연구회라는 취지에 맞게 주고받는 커뮤니티를 배려하여 서로 알고 있는 [것]을 나눌 수 있도록 댓글 칸을 좀 늘려주셨으면.. 뭐라 지껄이고 있는지 자판치는게 안 보임.. 자유게시판보다 묻고 답하기 란이 더욱 절실한듯.. 사람이 실시간으로 경험이나 앎을 일러주는 그 긍정적인 기능을 키워주셨음.. 아무도 안 읽을런지 모르는 구석에다 옹아리 적는건 한 포스트를 차지하고 쓰기엔 왠지 염치없어서..

최명순님의 댓글

최명순 작성일

  어떻게 가죠???

olive님의 댓글

olive 작성일

  명순님 정보가 없군요 ㅡ.ㅡ... 제걸 공개하면 좋아라 오해할 준비된 안이쁜 사람도 있구...

최명순님의 댓글

최명순 작성일

  마음에 있으므로 곧 보이겠죠. 저 기다릴 수 있어요. 즐거움으로...

olive님의 댓글

olive 작성일

  삼 (마, Cannabis sativa)종자가 잘 발달되는 열대지역에서는 종자기름을 식용유로 널리 사용한다는데,, 이 기름을 드셔보신 분이 계실런지.. 맛이나 향이 어떤지.. 먹어보지 아니한 식용유가 자꾸 튀어나와 어쩌지를 못합니다..파피루스와 우리나라 짚문화 살피다 보니 이 식물도 고대 이집 미이라에서 발견되곤 했다는군요..굳건히 우리나라 자생 토종인줄로만 알았는데.. 그 역사가 7000년이나 되는..다른 지역의 분포도에 놀랍니다..도데체 토종 식물 원산 이런게 혼란스러울 지경입니다

olive님의 댓글

olive 작성일

  명순님^_^ ... 황숙님 사과칼도 나오나 보던데요.. 사과을 최대한 다 먹기 위한 사과깍기 - 쪽으로 썰어 담지 아니하고 양파링처럼 동그랗게 썬다..씨방이 있는 중앙을 포크로 찍어 먹는다..그럼 사과를 낭비없이 거의 다 먹게 됨.. 혹은 요 상태로 가운데만 콕 찍어내고 오븐요리를 함..

최명순님의 댓글

최명순 작성일

  ???  저 아둔해요.